영화가 보여주는 인류의 미래는 대체로 비관적이다. 외계인이 침공한다거나, 기계문명의 지배를 받거나, 자본과 권력가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자연재해로 지구가 멸망하는 모습들이 그렇다.
미래사회에 대한 암울한 전망과 예언적 상상력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경고로 볼 수도 있는데, 이러한 관심은 역시 인간존재를 탐구하는 본능에 뿌리를 둔 것 같다.
핵전쟁으로 파괴된 지구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는 인류와 인간본성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과 희망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온통 사막으로 변해버린 땅에서 한정된 물과 기름을 소유한 독재자 임모탄과 그의 아내들을 데리고 탈출하는 여전사 퓨리오사의 대결로 펼쳐지는 한 편의 격렬한 추격전이다. 아내와 딸을 잃은 충격과 고통으로 절규하는 이들의 환영에 시달리면서 사막을 방랑하다가 임모탄 부하들에게 붙잡혀서 그들의 피주머니가 된 주인공 맥스가 퓨리오사의 조력자로 나서게 된 이야기다.
올해 가장 큰 화제작인 만큼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특별히 인간의 믿음과 희망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 임모탄은 시타델을 지배하는 왕이자 신으로 자처하는 폭군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주가 된 왕에게 순종하며 가끔씩 은혜를 입는 처지에 만족하거나, 워보이들처럼 임모탄의 전사가 돼 그와 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장에서 순교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한편으로 거대한 전투트럭에 미래의 씨앗이 될 여자들과 함께 시타델을 탈출한 퓨리오사의 마음에는 어릴 적 고향으로 기억하는 ‘녹색땅’(green place)에 대한 갈망과 신념이 있다. 어릴 때 시타델로 납치돼 노예로 살면서도 그 땅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녀는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드디어 고향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을 지키고 있던 여인들에게 녹색땅의 비보를 접하게 된 퓨리오사는 다시 절망하고, 그들을 추격하는 적들과 앞에 펼쳐진 소금땅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진다. 그때 맥스가 제안한 길은 유턴(U-turn) 하자는 것, 아마도 반전의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 아닌가 싶다.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누구나 이상향을 꿈꾸고 달아나지만 구원은 결국 ‘저기’가 아닌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워보이들처럼 현실에 안주하거나 우상에 중독돼있다면 ‘지금 여기’에 숨겨진 보물은 여전히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시종일관 달리고 쫓기고 파괴되는 현란한 영상 속에서도 끝까지 ‘서로 돕고 성장하며 희생할 줄 아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통쾌한 작품이다.
김경희 수녀는 철학과 미디어교육을 전공, 인천가톨릭대와 수원가톨릭대 등에서 매스컴을 강의했고, 대중매체의 사목적 활용방안을 연구 기획한다.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현재 광주 바오로딸미디어 책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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