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맞아 미리내성지를 순례했다. 올 여름엔 김대건 성인 묘소를 찾아 순교자 향기를 느껴보면 어떨까.
미리내. 순우리말로 은하수를 일컫는 말이다.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 속에 숨어 교우촌을 이룬 모습이 밤에 보면 마치 은하수 같아 붙은 이름이다.
신자들은 얼마나 깊은 산 속에 숨어 살며 김대건 성인의 시신을 지켜온 것일까. 교통이 발달한 지금도 성지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굽이굽이 경사로를 찾아 들어가야 한다. 이윽고 도착한 성지에는 한여름의 푸름이 가득 했다.
산과 나무에 둘러싸인 고요한 길을 따라 순례의 길에 올랐다. 묵주기도의 길이 펼쳐진다. 각 신비의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해 묵상할 수 있도록 했다. 성인의 묘소를 찾는데 묵주의 장미 꽃다발보다 어울리는 헌화가 있을까.
성인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자비와 마리아의 도움에 맡기며 살아갔다.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는 성인의 마리아 신심이 어떠했는지 말해준다. 이 책에서 달레는 “김대건 신부가 조선에 돌아올 때 라파엘호 나침반 노릇을 한 것은 성모 마리아였다”면서 “마리아 성화가 늘 돛대 밑에 펼쳐져 있었고, 낮에는 그에게 보호를 구하고 밤에는 그에게 호소했다”고 전한다.
묵주를 쥐고 성지를 오르는 길에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구름도 거의 없이 한낮의 햇살이 따갑게 내려앉고 있었다. 순교하던 그 순간, 성인이 본 하늘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형장에서 군사들은 성인의 양쪽 귀에 화살을 꽂고, 기둥처럼 박아놓은 창자루에 머리카락을 묶어 머리를 쳐들게 했다. 죽음을 앞둔 그 순간 성인은 “이렇게 하면 되었소? 자! 치시오. 나는 준비가 다 되었소”라고 두려움 없이 칼날을 마주했다.
그의 눈은 단순한 하늘을 뛰어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하늘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김대건 성인의 동상이 보였다. 이제 이 언덕만 오르면 그의 묘소다.
미리내의 묘소에 성인의 시신을 안장한 것은 이민식(빈첸시오)이다. 통상적으로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이는 사흘 후에 연고자가 찾아가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성인의 시신은 모래사장에 묻고 파수꾼을 둬 장례를 치를 수 없도록 막았다. 이민식은 성인이 순교한 지 40일 후 시신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험한 산길을 밤에만 숨어다니며 미리내까지 옮겼다.
성인의 묘소에 더 이상 성인의 유해는 남아 있지 않다. 성인의 유해가 전국에 퍼져 현양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지에도 묘소 뒤편의 성 김대건 신부 경당에는 발뼈가, 미리내성지 103위 기념성당에는 종아리뼈가, 미리내성당 제대 밑에는 하악골이 모셔져 있다. 다만 이 묘소에는 성인의 뼈와 살이 스며든 진토가 남아 있다.
촛불을 켜고 기도하려는데 어디선가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린 자녀와 함께 순례 온 가족이 여럿 보였다. 아직 교리도 순교도 이해하기 어려울 어린 아이들이 성인의 묘소 앞에서 부모와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
김대건 신부가 신자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올라, 초를 내가 아닌 이 땅에서 성인을 따라 살아갈 어린 자녀를 위해 봉헌했다.
“지난 날 성인성녀들의 자취를 단단히 닦고 실천하여, 성스러운 교회의 영광을 더하십시오. 하느님의 착실한 군사이며 의로써 맺어진 아들이 됨을 증언하십시오.”-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편지 ‘교우들 보아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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