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시작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신 것에서 찾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제자들을 부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열두 제자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당신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 당신이 뽑으신 제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 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증인이자 교회의 시작이 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오늘 들은 마르코 복음에서는 둘씩 짝지어 파견하시며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이릅니다. 그래도 마르코 복음은 조금 나은 편입니다.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는 마태오와 루카에서는 지팡이마저도 가져가지 말라고 이릅니다.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왜냐하면 지팡이는 여행길에서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지팡이는 여행을 돕는 도구이기도 했지만 들짐승이나 강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던 까닭에 길 떠나는 이들에겐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서들 안에 조금 차이는 있지만 최소한의 것만을 지닌 채 ‘회개의 선포’를 위해 서둘러 떠나야 한다는 어조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고장에 들어가 떠날 때까지 한 집에 머물러 있으라는 말씀 역시 다른 것들에 마음이나 정신을 빼앗기지 말라는 말씀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제자들에게 회개의 선포는, 예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은 급박한 일이었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명을 위해 파견에 앞서 ‘권한’을 줍니다.
하느님 일에 참여하는 것, 하느님 교회에 봉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제자들 모습에서 몇 가지 중요한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지도자나 봉사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위임’ 받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힘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 일을 할 때에 마음가짐 역시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것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두기 보다 하느님의 일에 가장 먼저 마음을 쓰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것들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에페소서는 이 모든 것들을 ‘하느님의 선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우리를 선택하셨고 ‘사랑으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선의와 사랑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를 선물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을 우리에게 베푸십니다.
하느님의 선의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사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에게 선사된 은총은 우리의 신앙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바오로 사도의 표현에서 ‘우리’의 역할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선택받았고,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용서받았으며, 은총을 풍성하게 받았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더 사랑받고, 더 많은 은총을 받은 사람은 더 많이 찬양할 것입니다. 물론 오늘의 말씀들이 이런 차별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풍성한 은총’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모자람 없이 넘치도록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더 많은 은총을 바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은총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받았는지 깨닫는 것이 부족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에게 다른 모든 것들에 앞서 하느님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단지 제자들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먼저 바라보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눈이 하느님을 향할 수 있다면, 부족함 없는 은총 역시 쉽게 드러날 것입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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