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신부들과 휴가를 간 적이 있습니다. 함께 간 일행 중에 신학교 다닐 때부터 가장 절친이면서, 운동을 할 때면 가장 라이벌인 두 신부가 있었습니다. 그 둘은 눈빛만 봐도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고 있는 친구지만, 운동을 할 때면 ‘원수도, 이런 원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승부욕을 불태웠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그랬습니다.
휴가를 간 동네는 몇 년 동안 여름이면 꾸준히 가던 곳이라 그 지역 청년들과 허물없이 대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습니다. 청년들을 만나 대화하는 도중에 ‘족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승부욕에 불타올라, 그 다음 날 오후에 당장 족구 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A 신부는 ‘ㄱ’과 한 편이 되었고, B 신부는 ‘ㄴ’과 한 편이 되었습니다. 평소 A 신부는 ‘ㄱ’이 족구를 잘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은근히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러면서 ‘ㄴ’이 배도 나오고, 운동 신경이 없어 보였기에, 승부까지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족구 시합을 하기로 한 다음 날 오전, 그 동네 마을 이장님과 신부님들은 형님, 동생하는 사이라 그분 사무실에 인사를 갔습니다. 서로 오랜만에 만난 얼굴이라 함께 즐거운 환담을 나누다 족구 이야기가 나오자, 이장님은 ‘ㄴ’의 족구 실력에 대해서 ‘족구를 잘하며, 지난번 마을 대항 족구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 몇 번이고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족구 경기가 될 것이라는 말도 해 주었습니다.
이윽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마을에서 건강 증진 차원에서 족구장을 상설로 설치해 놓은 곳에서 정말, 가장 절친 신부 두 사람이 인정사정없는 혈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처음 1차전에서는 예상했던 대로 A 신부 팀이 이겼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2차전과 세 번째 3차전을 연달아 B 신부 팀이 이겨, 승부가 역전이 되었습니다. 족구를 보면서 이렇게 흥미진진하기는 처음이었는데, 더욱 놀란 것은 배가 나오고 운동 신경이 없어 보이는 ‘ㄴ’이 마을 이장님 말씀대로 족구 경기장을 날아다녔습니다. 그 경기를 보고 있는 나도, ‘와! 와!’ 하며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였습니다.
그날 ‘저녁식사 내기’ 시합이라 족구 경기가 끝난 후, 마을에서 잘한다는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며 족구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식당에서 나누는 모든 말끝에는 ‘족구’라는 말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식사가 맛있자, ‘와, 족구 맛이다’, 일몰이 아름답게 펼쳐지자, ‘와, 족구스럽다’ 등. 그러다 식사 중에, A 신부님이 ‘ㄴ’에게 묻기를,
“야, 너 원래 족구를 잘했어? 오늘 정말 잘하던데!”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 모두가, ‘ㄴ’이 몇 달 전 마을 대항 족구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받은 이야기랑, 족구에 관해서는 정말 최고의 선수라는 말을 오전에 마을 이장님이 우리에게 이미 말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A 신부님은 놀라며,
“정말? 내가 정말 교만했나 보다. 얼마나 교만했으면 다른 사람 말이 하나 안 들렸으니!”
그날 저녁, 식사하면서 나눈 이야기의 주제는 ‘족구’에서 ‘교만’으로 흘렀습니다. 특히 ‘교만’ 하면 다른 사람의 말이 안 들린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안 듣는 이들이 결국 교만함에서 나온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암튼 ‘교만하면 다른 사람의 말이 안 들린다’는 진실을 깨닫는데, 그날 저녁 값 어-엄-청 많이 들었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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