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TV 보기가 일상이 된 요즘이다. 안방의 TV와 달리 인터넷에서는 추천과 검색을 거쳐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고, 전체 방송분 중에서도 지루한 부분은 건너뛰고 하이라이트만 골라볼 수 있다. 아마추어 방송인들이 유튜브와 개인방송 사이트에 대거 등장하고 실시간 채팅으로 시청자와 직접 소통하게 된 것도 괄목할 변화다.
이런 흐름이 오프라인 TV에도 가시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단적인 예가 인터넷 개인방송 형식을 빌린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MBC, 약칭 ‘마리텔’)이다. 출연자 5명은 포털사이트에 마련된 생중계 겸 채팅 창을 통해 시청자들과 대화하며 방송을 진행하고, 녹화된 쇼는 전문가의 편집을 거쳐 공중파 채널에 방송된다. 방송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마리텔’은 잘 만든 오락물이다. 라디오의 청취자 전화 연결과도 같은 채팅의 친밀감, 채팅 참여자들의 유머 감각, 개인방송의 소탈함은 물론, 출연자 수만큼 다양한 볼거리와 경쾌한 편집이 돋보인다. 다만 우리가 비판적으로 성찰할 부분은, ‘마리텔’이 인터넷 방송 형식을 가져오면서 인터넷 특유의 ‘하이라이트 편식증’까지 함께 옮겨왔다는 점이다.
모든 미디어 콘텐츠가 그렇듯 방송 프로그램도 잘라내기, 곧 편집의 결과물이다. 프로그램 기획, 출연자 섭외, 스튜디오 세팅, 리허설 등 녹화에 선행되는 준비과정은 물론이고, 녹화된 내용이라도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은 바로 잘려나간다. 실제로 이뤄진 일인데도 TV 속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녹화 당시의 ‘마리텔’은 출연자들이 각자 진행하는 5개의 프로그램이지만, 방송되는 것은 그들의 경합을 60분 이내로 압축한 편집본이다. 방송에 서툰 출연자의 분량을 잘라내는 것도 모자라, ‘마리텔’은 시청자들의 재미있는 ‘드립’(애드립의 준말, 재미있는 즉흥 발언)을 뽑아 자막을 넣는 식으로 화면에 끊임없이 양념을 친다. 방송국 홈페이지에서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하이라이트 영상만을 뽑아 2~3분 단위로 끊어 제공하고, 네티즌들이 동영상을 보다가 재미없는 부분을 건너뛰는 행태와 유사한 편집 방식이다. 결국 콘텐츠의 전체적인 맥락은 증발되고, 시청자에게는 여백도 여운도 없이 강한 자극으로만 채워진 ‘하이라이트 모음집’만이 전달된다.
재미있는 방송은 제작자의 임무요 시청자의 권리다. 하지만 녹화 전후의 과정과 편집점 바깥의 전후 맥락이 삭제된 조각 영상에 길들여지는 사이, 우리가 사람과 세상을 보는 관점마저 하이라이트만 편식하는 식으로 변해가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사람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에는 풀리지 않는 고민, 지난한 기다림, 고통과 인내가 상존하기 마련이건만, 편집된 TV 속 세상의 여백을 손쉽게 건너뛰며 하이라이트에 탐닉하는 사이, 우리는 편집될 수 없는 TV 밖 세상에서마저 멀리 있는 좋은 것만을 꿈꾸며 현재를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김은영(TV칼럼니스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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