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회동성당, 대구 계산주교좌성당, 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 인근을 돌며 지켜본 사람들의 일상은 우리와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그 사람들에게는 고되게 느껴질지 모르는 일상이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듯, 우리의 삶 역시 다른 이들에게 신선한 의미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거제도에 위치한 지세포성당, 전주 전동성당, 인천 답동주교좌성당을 끝으로 여름기획 ‘일상에서 쉼표를’은 마무리되지만, 허락해 주신 매순간이 꽃자리라는 어느 노사제의 고백처럼 주님을 뵈러 가는 길, 그분과 함께 나오는 길에서 일상 속 은총과 행복 발견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거제도까지 가는 길은 멀지만 도로의 발달로 예전보다는 훨씬 쉽게 갈 수 있다. 거제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들로 이제는 도서지역이지만 도서지역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지세포성당에 도착한 순간 들려오는 갈매기 소리가 이곳이 바닷가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바다가 보이는 성지를 걷다
지세포성당을 방문했다면 꼭 가봐야 할 장소가 복자 윤봉문 요셉 성지다. 복자의 묘소인 성지는 거제시가 해안절경을 따라 조성하고 있는 ‘섬&섬길’ 중 ‘천주교 순례길’로 공식 지정돼 신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거제도에 최초로 천주교를 전파한 윤사우의 아들인 복자 윤봉문. 1852년 경상도 경주 인근에서 출생해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실천했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거제도로 건너와 신앙을 전파하며 살던 그는 1888년 체포돼 통영으로 압송됐다. 고진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배교하지 않고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성지를 찾아가는 길을 모른다면 성당 사무실 입구로 가보자. 약도가 그려져 있다. 그래도 아리송하다면 사무실에 물어보면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성당에서 나와 도보로 쭉 올라갈 수도 있지만 차를 가져왔다면 지세포중학교 옆길로 올라가자. 금방 성지에 도착할 수 있다.
성지에서 전망대로 가는 길에는 대나무 숲이 있다. 시원한 대나무 숲 안쪽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은 깊이 있는 묵상을 돕는다. 한낮임에도 무성한 대나무 숲의 그림자 덕분에 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도착한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세포항은 더할 나위 없이 고즈넉하다.
죄인들이 쓰던 큰 칼 모양의 순교자의 탑을 지나면 명상의 길이다. 편백나무 숲 안에 있는 이 길은 깊은 산속을 걸어가는 느낌이 들게 한다. 삼림욕을 하다가 쉴 수 있는 공간들도 여러 곳 마련돼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문화공간
갈매기들이 한가로이 쉬고 있는 성지 앞 저수지를 지나 지세포항으로 가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있다. 먼저 소개할 곳은 거제조선해양문화관으로 어촌민속전시관과 조선해양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어촌민속전시관은 거제의 역사와 문화, 민속놀이는 물론 잊혀 가는 어구, 물고기 잡는 법, 어촌의 생활 모습들 등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장소다. 또한 연근해 및 태평양에 서식하는 다양한 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 수족관도 마련돼 있다.
조선해양전시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의 배까지 다양한 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배의 기본원리, 만들기 및 다양한 항해체험을 해볼 수 있는 해양학습실도 준비돼 있다.
거제조선해양문화관 옆에는 돌고래체험파크인 거제씨월드가 있다. 돌고래 체험시설인 거제씨월드는 돌고래 만지기, 악수하기, 먹이주기, 함께 수영하기 등의 체험을 통해 교육과 치유, 휴식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볼거리, 즐길 거리도 좋지만 어린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가족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문화관 옆의 광장에서 뛰어놀고, 인근에 있는 바다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현장이었다.
교우촌, 예구마을을 가다
지세포성당에서 도로를 따라 와현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서이말등대가 있다. 일본 대마도가 바라보이는 거제도 동쪽 끝자락인 이곳에 거제도에 복음을 처음 전파한 윤사우와 그의 장남 윤경문 베드로가 움막을 짓고 살았다. 세월이 지나 그들이 사용했던 움막과 밭은 흔적만 남았지만 우물은 지금까지 잘 나오고 있다. 지세포성당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살던 신자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이곳에 정기적으로 순례를 오고 있다.
와현해수욕장을 지나 예구마을에 가면 마을 한 가운데에 공소가 있다. 주민 70%가 신자인 예구마을은 교우촌이라 할 수 있겠다. 매 주일 오전 8시30분 예구공소에서 미사가 봉헌된다.
거제도 일운면 예구마을 포구에서 산비탈을 따라 20여분 올라가면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공곶이’에 도착한다. 공곶이라는 이름은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 때문에 붙여졌다. 동백나무, 수선화, 조팝나무 등 강명식(바오로)·지상악(갈라) 부부가 일군 꽃동산은 찾아오는 이들의 시름을 달래고 어루만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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