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 마을에선 삽 하나 잃어버린 적 없어요. 한 식구 같아요.”
자칭 타칭 ‘예비신자’인 신동직(67)씨의 자랑이 이어진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에 다니던 신씨가 은퇴 후 삶을 의탁하기 위해 돌아본 곳만 십 수 곳. 마침내 든든한 보금자리를 찾았다는 자부심이 넘쳐났다.
“함께 공동체생활을 하며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어 얼마나 좋은 지 몰라요.”
남편 신무송(바오로·74·서울 양재동본당)씨와 이른 바 ‘사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천복자(히야친타·75)씨는 ‘사누스빌(Sanusvill)’ 자랑을 할 때 얼굴에 홍조마저 띠었다.
태백산맥 한가운데를 관통하듯 솟은 차령산맥 줄기, 치악산의 허파에 해당하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매화산 자락에 자리한 ‘사누스빌’. ‘사누스(Sanus)’는 ‘건강한’, ‘치유되는’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다. 지친 몸과 마음을 새롭게 치유해 건강한 모습으로 하느님을 뵈러 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에서 인생 제2막을 열어가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하느님나라를 향한 본격적인 ‘서막’일 뿐이라고들 말한다.
사누스빌에서의 하루는 매일 아침 6시부터 함께하는 산책으로 열린다. 그냥 산책길이 아니다. 마을 둘레 숲속 길 3㎞ 남짓한 공간에 조성된 성모동산과 십자가의 길을 도는 걸음은 안부를 챙기고 소소한 약속도 잡고 세상사를 나누는 장이다. 오솔길에서는 늘 기도하는 마을주민을 만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여는 반모임, 마음 맞는 이들끼리 수시로 갖는 기도모임 등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계절별로 정월대보름 축제에, 함께 산나물을 캐 나누는 산나물 축제, 한여름 밤의 콘서트는 인근 마을주민들에게도 인기다.
▲ 주민들이 아침 산책 중 십자가의 길을 봉헌하고 있다.
베드로의 마음으로
“초막 3개를 지어 하나는 주님께 드리고 다른 초막에서 형제들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오늘을 있게 한 것 같습니다.”
▲ 박영군 대표.
박 대표의 꿈은 30년도 더 전에 씨앗을 품기 시작했다. 1978년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본당 청년연합회 초대회장을 지내면서 체득한 신앙은 두고두고 삶의 밑거름이 됐다.
“살아있는 성자라 불린 아베 피에르(1912~2007) 신부님이 평생 일구신 빈민공동체 ‘엠마우스’에 반했습니다. 그게 평생 화두였습니다.”
1977년부터 서울 영 엠마우스 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빠지지 않고 발걸음을 한 워크캠프는 이날을 위한 단련의 장이었다. 서울 행당동 무허가 판자촌, 경남 산청 한센시설 성심인애원, 경기도 양평군 양동 평화의 집, 서울 성가정입양원 등 어려운 이웃이 있는 곳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서울신문에서 27년간 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기자상’을 두 차례나 받을 정도로 신앙과 일 모두 열심이었다. 그런 그가 2002년 회사를 그만두려하자 붙잡는 이들이 적잖았다. 미련 없이 은퇴를 선택한 그가 찾은 곳은 지인이 운영하는 부동산 개발회사. 꿈으로만 남아있던 현실에 두려움 없이 뛰어든 것이다. 40주에 걸친 교육을 마친 뒤 본격적인 첫 삽을 뜬 게 지난 2004년이었다.
꿈을 현실로
누구나 꿈꾸지만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전인미답의 길.
“이 분야를 잘 알았더라면 아마 엄두를 못 냈을 겁니다.”
몇 차례 고비를 넘기고 주천강변 일대 10만㎡(3만 평) 대지에 처음 둥지를 튼 사누스빌. 현재 입주해 있는 32가구 100여 명의 주민 가운데 90%가 신자다. 따로 신자만 고른 것도 아닌데….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60대가 가장 많다. 40대 남궁준(미카엘)씨가 막내인 셈.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자연스레 호칭도 세례명을 부르는 게 다반사다.
생활도 거의 함께 한다. 어느 집에서 김장을 하거나 화단을 꾸미거나 주차장을 고칠 때도 따로 일꾼을 부를 필요가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내 일처럼 달려와 ‘한가락’ 해왔던 숨겨둔 솜씨를 발휘한다. 주일이면 약속이나 한 듯 인근 안흥성당으로 몰려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소로 있던 안흥성당이 본당으로 승격한 데도 사누스빌 신자들의 힘이 적지 않은 셈이다. 지역 명물 안흥찐빵 축제에 참가해 홀몸노인 돕기 자선 바자를 열어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실천해오고 있다.
이런 힘이 바탕이 됐을까. 개신교에서 전도사를 했을 정도로 열심인 부부가 이곳에 살면서 입교해 영세 1호 부부로 탄생하기도 했다. 이 부부의 조카도 세례를 받고 해외 선교사가 됐을 정도로 열심이라 신앙을 낳고 키우는 교우촌이 따로 없다.
복잡한 도회지에서의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입소문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 사누스빌은 일반 방송사와 일간지 등 각종 언론매체에서도 은퇴를 앞둔 이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전원주택단지로 앞 다퉈 소개되고 있다. 입소문을 타면서 이곳에 함께 살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인근에 2차 뜨래꽃마을, 3차 사누스밸리, 4차 사누스힐까지 마을이 확장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해 인천, 수원, 분당, 일산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멀리 부산, 경북 경산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내년에는 16대째 경북 왜관에서 살고 있다는 부부도 자신들의 터전을 오롯하게 옮기기로 했다.
오는 2016년 네 번째 마을까지 모두 입주를 마치면 주천강 일대 7만6000여 평 대지에 160여 가구가 신앙공동체를 일궈나가게 된다. 교회사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셈이다.
▲ 강원도 횡성 ‘사누스빌’에서 한 식구처럼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 함께 감자를 캔 후 나눠먹는 자리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꿈도 같이
“정원을 새로 가꿔볼까 해요. 성가대에 제 자리가 있을까 모르겠네요.”
이곳에서의 삶에 폭 빠진 천복자씨가 삶은 감자를 나누다 내놓은 말이 꿈 나누기로 옮겨 붙었다.
얘기를 거듭할수록 신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순전히 노인뿐이던 안흥공소 시절, 성가대를 누가 꿈이나 꿨을까. 하지만 지금은 평균 연령 65살의 노인들로 이뤄진 성가대가 그야말로 성가를 높이고 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이뤄진 일이라 믿습니다. 주님 뜻만 좇는 공동체로 발전해 나갔으면 합니다.”
박 대표가 꾸기 시작한 꿈은 이내 지원세력을 얻었다. 소비만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라 생산도 함께 이뤄져야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협동조합형 마을기업이다. 주민들이 신앙에 더해 생활도 함께 나눠갈 수 있는 고리인 셈. 쉽게 할 수 있는 된장 등 장류와 효소, 절인 배추를 만드는 일부터 조경, 전원주택 관리 등 개개인의 능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일 등 입을 열 때마다 할 수 있는 일들이 쏟아진다.
피정센터 운영도 그 가운데 하나. 여느 피정집과 다른 것은 철저히 마을사람들의 봉사로 꾸려간다는 것. 단순히 전원생활이 아니라 대안적 신앙공동체를 체험해보고 싶어하는 누구에게나 열어놓을 계획이다.
“우리 스스로 지상에서 천국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한 형제가 될 수 있는지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문의 033-344-8877 (주)사누스, www.san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