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 연구소에서 예전에 열심히 봉사를 해 주셨던 분들이 인사를 왔습니다.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며 찾아온 것입니다. 어찌나 반갑던지! 대화중에 그분들은 성경봉사 하는 이야기, 견진 받은 이야기, 레지오 단원이 된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습니다. 나도 새로 이사 온 연구소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들려주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가다가 연구소가 순교성지 안에 있기에 잠깐 순례를 해도 되는지를 묻더니,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마당으로 나와서는 성모님 상 앞에 초봉헌함이 있는 것을 보고 초를 구입한 후 촛불을 켜고 조용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습니다. 이어서 저녁 식사를 뭐로 할지 고민하면서 차를 기다리는데 비는 오고, 차는 안 오고! 그 순간, 근처 본당에서 활동하는 신자 분의 차가 우리 앞을 지나가다가 멈추어 섰습니다. 그러더니 운전석 창문이 열리고 운전하시던 형제님이,
“신부님,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비도 오는데 거기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정말이지, 비는 계속 오고, 차는 계속 안 왔습니다.
“○○동 가려고요, 차가 정말 안 오네요.”
“신부님, 타세요. 함께 껴서 타면 돼요. 모셔다 드릴게요.”
신세 지는 것이 익숙하지 않지만, 손님이 있는 관계로 ‘감사하다’며, 그냥 그 차에 탔습니다. 앞좌석에 앉으라고 하는데, 앞에는 그분의 부인이 앉아 있어 얼른 뒤에 앉았습니다. 뒤에는 또 한 분의 자매님이 계신데, 특전 미사 후 운전하는 부부랑 방향이 같아서 그 차에 탄 것입니다. 차 안에서 다들 인사를 나눈 후, 식당 방향으로 가는데, 운전하시는 형제님이,
“신부님, 지금 저녁 시간인데 저희도 그 자리에 끼면 안돼요?”
그러자 형제님의 부인이 남편의 옆구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일행들이 먼저 좋다며, 함께 식사하자는 말에 동의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어, 이거 아닌데!’ 하다가, 엉겁결에 모두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짬뽕을 시킨 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중에 봉사자분들은 얼마 전에 ‘견진 받은 이야기’, ‘레지오에 가입한 이야기’를 하자 다른 분들은 진심으로 축하해 주며, 관심 있게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봉사자분들을 만났을 때는 얼굴 보는 것만 반가웠기에, ‘견진 받은 이야기’, ‘레지오 가입한 이야기’ 등에 대해서는 귀로만 대충 들었습니다. 하지만 신자들에게는 그것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진지한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레지오에 관해 조언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킨 음식이 나오자 함께 기도하며 맛있게 먹는데, 그 모습이 참 묘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같은 신앙인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눔에 있어서는 처음 만나건, 오랫동안 아는 사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녁 먹고 헤어진 후, 나는 숙소로 돌아오면서 ‘무엇이 처음 만난 신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었고, 서로의 신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순간, ‘앗! 바로 그거다’ 싶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성체 성사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몸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몸인 같은 빵 나누어 본 사람이기에, 자연스레 그 마음도 나눌 수 있었겠구나 싶었습니다. ‘바로 그거였구나, 나누어 본 경험. 성.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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