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가톨릭신자들만도 아니다. 영성적 순례만 목적으로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길 위에서 공유하는 감정은 비슷하다. 이고 진 것을 최대한 버리는 무소유가 자연스럽게 실천된다. 자신의 내면과 삶에 관해 성찰하게 된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에는 매일같이 새로운 순례객들의 발자국이 생겨난다. 7월 25일 야고보 성인 축일을 앞둔 이맘때가 가장 붐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뻗은 들판길, 순박한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지나가는 농가길,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열매들로 가득한 밭길…. 땡볕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라치면 어느 틈엔가 푸른 바람기운을 머금은 숲길로 들어서게 된다.
배낭을 지고 힘차게 걷는 청년들, 자전거에 짐을 꽁꽁 메고 달리는 중년 부부, 유모차를 밀며 걷는 아기엄마 등 걷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길가의 사람들은 여전히 순박하다. 끝없이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환대한다. 마을마다 작은 성당문은 늘 열려 있다. 간혹 상주하는 사제가 있어도 대부분 고령이지만, 언제든 순례자들과 함께하는 대화와 기도, 미사를 마다하지 않는다.
길 위에서의 일과는 단순하다. 걷고 쉬는 것. 그리고 순례자들은 걸으면서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왜 걷지?’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생 장 피 드 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이르는 800여km 여정이다. 종착점은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교구 주교좌 성 야고보 기념 대성당. 이곳에서 순례를 완주했다는 증서를 받아가는 이들만 연간 20여만 명이다. 성인의 좌상이 있는 중앙 제대 뒤편 계단은 칸칸 마다 움푹 닳아있다. 수많은 발걸음들이 만든 흔적이다.
세계 곳곳에 유명한 순례길이 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도리어 이른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며 너나할 것 없이 버킷리스트에 올린다. 중세 시대부터 수많은 순례자들이 걸었던 이 길을 유럽 의회는 ‘유럽 최초의 문화의 길’로 선포하기도 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또한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짧은 시간 길 위에 있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삶이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살아내야 할 신비다’. 성 야고보 기념 대성당에 도착해 뽑은 쪽지를 통해 받은 선물입니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를, 또 다른 사람들이 치유해주었습니다. 이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순례란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돌아오는 것임이 느껴졌습니다. 제 삶의 자리에서 진짜 순례를 시작해보렵니다.”
“오랜 기간 경비를 모았습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지냈던 사도 중 한 분인 야고보 성인을 보고 싶어서요. 예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서요.”
순례자들의 모습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각자 마음속 깊이 품은 의문들에 대해 해답을 찾는 여정, 하지만 ‘걷고, 머무르다, 돌아가는’ 단순한 여정을 보이는 모습에서다. 이제는 단순한 돌아감이 아니다. 길을 걷고 사람들을 만나고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 경험은 일상 안에서 또 다른 열매로 영글어질 것이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여러분 앞길에 좋은 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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