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매스컴 종사자들의 대부’, ‘한국교회 첫 형제 신부’, ‘실천적인 순교자 현양 운동가’ 등 오기선 신부(요셉, 1907~1990)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오 신부가 선종한지 25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이름은 바로 ‘고아들의 아버지’이다.
오기선 신부가 고아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해방 직후 충남도청 사회과에서 직영하던 고아원 ‘대전학원’을 인수하면서부터다. 당시 대전 대흥동에서 사목을 했던 그는 고아원 명칭을 ‘충남애육원’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고아들의 대부로 나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고아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오 신부는 부산 송도의 허름한 판잣집에 고아원을 짓고 아이들을 친부모처럼 보살폈다. 이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아원의 규모는 엄청나게 확대됐다. 무려 3000여 명의 고아들이 오기선 신부를 ‘아버지’로 불렀을 정도였다.
그는 대전으로 돌아와 충남사회사업연합회장으로 11년을 일했고, 1963년에는 고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아들 신부인 김정수 신부(대전 내동본당 주임)는 한 기고를 통해 “오 신부님은 가난한 고아와 어려운 피난민들을 끌어안고 사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또 다른 아들 신부인 오웅진 신부(예수의꽃동네형제회 총원장)는 오 신부에게 감명 받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했다.
고아들을 사랑했던 오 신부의 마음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인을 기리는 이들이 함께 설립한 ‘오기선 요셉 장학회’를 통해서다. 장학회는 황인국 몬시뇰과 오웅진 신부, 김정수 신부, 장영식 신부 등이 주축이 돼 오 신부 선종 15주기인 2005년에 창립됐다. 이후 장학회는 가난해서 공부하지 못하는 고아와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오기선 요셉 장학회는 7월 30일 오전 11시 경기도 용인 천주교공원묘지 성직자 묘역에서 ‘오기선 신부 추모 25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경기도 용인에서 1907년 태어난 오기선 신부는 1932년 사제품을 받고, 1937년 프란치스코 재속3회를 세웠다. 1971년 은퇴 후에는 103위 복자 시성운동과 성지 발굴 등에 힘을 쏟았고, 마카오와 필리핀 등에 김대건 신부의 동상을 건립하는 등 순교자 현양운동에도 앞장섰다.
카리타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