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수학강사와 과외 수업을 하는 아내에게 수업을 받으러 집을 찾아온 학생들에게 평소와 다른, 낯선 느낌이 들었다.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기에 물었다.
“갑자기 머리는 왜 자른 거야? 머릿결이 상했니?”
“소아암 환자 가발 만들어 주려고 잘라서 기증했어요.”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인 김예은(소화데레사)양과 정선화양의 입에서 나온 답변에 기자는 한동안 말을 잊고 멍한 상태가 됐다. 부끄러움과 청소년에 대한 희망 등의 감정이 교차했다. 기자 역시 딸을 키우는 아버지다. 여중생에게 ‘긴 생머리’가 어떤 의미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경감해주기 위해서 자연모발을 기부받아 가발을 지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학생들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누구에게 자랑하거나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사랑을 실천한다는 마음 하나로 귀한 머리카락을 기증한 것이다.
게다가 이 학생들은 지난 4월 세월호 1주기 추모미사 때에 난타 공연을 위해 시험 기간에도 학원에 결석했던 것을 알고 있었던지라 더욱 마음이 짠해졌다.
이들의 얼굴에서 천사를 본 건 과연 기자뿐이었을까?
교구에서 ‘청소년 활성화’를 외치고 있는 이즈음에 이들의 선행이 귀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을 설득해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전한다.
‘청소년에게 희망을’이 아닌, ‘희망은 청소년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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