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된 뮈텔 문서에는 서한 외에도 신문기사, 전보, 유인물, 안내장(초청장), 명함 등도 있다. 이와 같은 방대한 문서는 한 개인이 수집한 최대의 문서라는 의미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국내외 정세 및 중요 인물들과 관계돼 있어 한국 천주교회사는 물론이고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한국사 연구에 유용한 자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중에서도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명함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에 2권의 파일로 보관 중이며 123종이 현재 연대순으로 정리돼 있다. 이 명함들은 뮈텔 주교가 한국에 체류하던 48년 중 주교가 되던 1890년 이후 1933년 사망하기까지 약 43년 동안 그가 직접, 간접으로 접촉하던 모든 국내외 인사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공적, 사적으로 만났는지 알 수 있다.
뮈텔 주교가 명함을 주고받은 인물들은 주로 외국인들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명함도 찾을 수 있다. 남아 있는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들의 명함 수가 한국인들의 것보다 3배가 훨씬 넘는다. 교구장으로 부임한 초기부터 뮈텔 주교는 무엇보다도 조선 교회가 하루 빨리 완전한 선교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을 최고의 당면 과제로 삼고 선교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따라서 그가 명함을 받았던, 다시 말해 교제했던 사람들은 선교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었고 그 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외국인들을 제외하면 그 나머지는 조선의 양반, 관료들이었다. 이렇게 뮈텔 주교가 보관하다 현존하는 한국인의 명함 중 가장 초기의 것은 1895년 경의 것이며, 가장 나중의 것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대체로 뮈텔 주교가 대주교로 임명된 1926년을 전후한 시기까지 명함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인으로 궁내부대신 이재순, 덕원군수 팽한주, 한성판윤 이채연, 외국인으로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 벨기에 영사 뱅카르 등이었다.
명함을 주고받을수록 뮈텔 주교의 조선에서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갔다. 1895년 이후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면서 조선에 대한 침략적 야심을 드러낸 일본과 러시아 두 제국 사이에서 자주독립을 위해 도움을 바라고 있던 고종과 측근 관료들은 프랑스 제국의 영향력 있는 인사로 뮈텔 주교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뮈텔 주교는 1898년 5월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축성식을 맞이해 국내외의 많은 인사들을 초청했음을 초대장과 초대된 외국인 명단을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축성식에서 조선 황제의 도움에 대해서 언급했다. 1898년 5월 29일 뮈텔 주교 일기에 이렇게 기술돼 있다.
“나는 또 이 대성당이 입증하듯이 조선에서의 우리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황제 폐하의 호의에서 온 것임을 간단히 조선말로 말하고 황제 폐하를 위해 건배하고 ‘만셰 만셰 만만셰’를 불렀다. 한성 판윤 이채연은 한불조약으로 시작된 마음의 일치가 조선과 외국 사이에서 언제나 있은 우호 관계에 의해 지속되기를 기원한다고 간단한 답사를 하고, 우호 관계의 지속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 정부는 천주교 신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선교사들의 존재와 그들의 포교활동을 알고도 묵인해 줬다. 하지만 조선을 위협하는 주변 국가들의 움직임을 느낀 조선 정부는 프랑스 세력의 도움을 받기 위한 생각으로 뮈텔 주교를 찾게 됐고, 이에 따라 프랑스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종현성당 축성식에 초대된 인사들의 숫자는 뮈텔 일기에 의하면 모두 75명이다. 외국인이 30명, 조선인이 45명인데 외국인의 경우에는 콜랭 드 플랑시 주한 프랑스 공사를 비롯한 각국의 외교 사절들과 조선 정부에 고용된 기술자나 고문들이었고 조선인들은 대부분 조정의 대신들과 지방의 고급관리들이었다. 따라서 종현성당의 축성은 한국 천주교회사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당시 조선의 정치·사회사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종교적, 사회적 행사였다.
종현성당 축성식 자료에서 알 수 있듯 뮈텔 주교를 통해 모여진 여러 자료들은 천주교회사에 한정되지 않고 당시 조선사회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리고 이렇게 자료를 소개하면서 필자 역시 그동안 막연하게 역사책에 서술된 딱딱한 문장으로만 접했던 사건들이 조금은 생생하게 느껴진다.
뮈텔 문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 조상들이 남긴 조각조각의 흔적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을 통해 과거의 사건들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도 찾아가는 명동성당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그리고 우리가 순례하는 신앙 선조들의 흔적들을 통해서 기억되고 체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연구소 소장 유물 중 뮈텔 주교가 보관했던 자료들에 대해 살펴봤다. 이 자료들은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연구소 설립자 고 최석우 몬시뇰이 발견하고 정리한 것들로서 자료의 훼손을 막기 위해 일반 자료들과는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소의 귀중자료들은 반드시 소장의 허가를 얻은 후 열람할 수 있다.
※문의 02-756-1691 한국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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