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에 대해 잘 안다고 해서 또 성모님을 잘 공경한다고 해서 그에게서 성모님의 향기가 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의 구체적인 삶 또한 성모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어려운 문제이지요. 성모님에 대한 지식만으로도, 성모님에 대한 신심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과 함께 하는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마리아 영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리아 영성의 세 가지 내용, ‘마리아를 맞아들이다’, ‘마리아를 본받다’, ‘마리아를 살다’를 간략히 보겠습니다.
마리아를 맞아들이다
첫째는 ‘마리아를 맞아들이다’입니다. 요한복음 19장 25절부터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주십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는 그때부터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십니다. 여기서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성모님을 자기 자신을 이루는 내적인 공간 모든 곳에 맞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주 특별한 순간」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사생활 중의 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내밀한 방 안에 모셔 들여야 한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맞이할 때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지요. ‘성모님, 기꺼이 제가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이 선을 넘어오면 안 됩니다. 그건 곤란해요. 제 사생활입니다.’ 이런 식이면 안 되겠지요.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신다는 것은 성모님께 제한 없이 모든 것을 내어드린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을 어머니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어머니께 맡기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성모님께 개방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성모님의 구원적 영향 아래에 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지요. ‘성모님, 가만히 계세요. 제가 다 해 드릴게요. 제가 해드리는 것 받기만 하세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에 대해서 내가 주도권을 취하고 이것저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께 주도권을 내어드리고 성모님께서 하시는 대로 나를 내어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모님을 맞이할 때, 준비가 될 때를, 내가 완벽하게 준비가 될 때를 기다리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성모님을 어머니로 주시자 그는 그때부터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부족함을 느끼는 바로 지금이 성모님을 맞이해서 우리를 맡겨 드릴 때입니다.
마리아를 본받다
마리아 영성의 내용 두 번째는 ‘마리아를 본받다’입니다. 성모님의 덕행을 본받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단계입니다. 나의 지금 상황 안에서 성모님이시라면 어떻게 행동하실까 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이 내 것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첫 번째로 이야기 할 것은 성모님의 믿음입니다. 먼저 성모님은 끝까지 믿으신 분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주님 탄생 예고 때 당신 아드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다윗 가문을 영원히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엄청난 예언을 들었었지만, 성모님께서는 당신이 들었던 이 예언과 정반대되는 상황, 즉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도 당신의 믿음을 묵묵히 지켰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의 이 끝까지 믿는 믿음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잘 하다가도 넘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믿음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모님의 끝까지 믿는 믿음을 이렇게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믿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믿고, 믿다가 넘어지면 또다시 일어나서 믿는 것이지요. 성모님께서 끝까지 믿으실 수 있었던 것은 당신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시선을 고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성모님의 믿음은 성장하는 믿음입니다. 성모님의 믿음이 성장했다는 것은 확신하는데 있어서 성장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의 믿음은 우리와는 좀 다르게 첫 순간부터 완전했습니다. 성모님의 믿음이 성장했다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을 더욱더 완전하게 알게 되었다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성모님은 어떻게 믿음 속에서 성장하실 수 있었을까요? 성모님은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는 분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자신 안에만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봉사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주신 은총에 감사해하는 이에게, 응답하는 이에게 또 다른 은총을, 더 크신 은총을 주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길 바란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에 응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성장해야 하는 걸까요? 답은 죽기까지가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성장하기를 멈추지 말아야지요. 하느님께 응답하기를 그치지 말아야지요.
그리고 성모님은 들음의 모델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침묵 속에서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모님처럼 침묵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나자렛에서의 감추어진 시기를 보내신 분이십니다. 이 시기 동안에 성모님은 하느님이신 분을 보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하느님을 더욱더 깊이 배우셨습니다. 우리도 침묵 가운데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을 양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마리아를 살다
이제 마리아 영성의 세 번째 내용입니다. 성모님을 바라보며 성모님의 영성을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한 이는 이제 그것을 살아야 합니다. 성모님이시라면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하실 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행하는 단계입니다. ‘성모님 저희가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하고 여쭈어본다면, 성모님은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제 마음 안에 깊이 박힌 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 아드님이,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향해 서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형성될 수 있도록, 우리가 예수님과 일치할 수 있도록 일하십니다. 마리아를 산다는 것은 이렇게 성모님처럼 그리고 성모님의 도우심과 함께 성모님께서 지금 이곳에서 하고 싶어 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모님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성모님이 하셨던 일을 그대로 똑같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이 아니라 우리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시지요. 그래서 ‘성모님을 살다’라는 말은 좀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작은 성모님으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이기를, 아버지이기를, 아들, 딸이기를 그만두고 무언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의 삶을 성모님의 도우심 안에서 성모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바로 우리가 성모님의 감각을 지니고 우리 삶의 자리에서 우리의 직분에 충실하면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성모님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모님을, 작은 성모님을 사는 것입니다.
성모님을 맞이하고 본받고 살아가는 마리아 영성을 하루하루 살아감으로써 우리 안에서 성모님의 향기가 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규화(요한 세례자) 신부는 2000년 1월 수원교구 사제로 서품 후 광주본당 보좌, 본오동성요한세례자본당 주임 등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이탈리아 그레고리안대학에서 교의신학을 공부하고, 2014년 6월부터 수원 가톨릭대학교에서 영성지도 신부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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