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에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음과 지혜입니다. 제1독서인 잠언에서 하느님의 지혜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어라.” 또 에페소서에서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서로 다른 책이지만 사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페소서에서 보면 지혜는 마치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을 깨닫는 것처럼 표현됩니다. 그리고 잠언서 역시 ‘예지의 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실천입니다.
일부러 어리석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지혜로운 길을 찾고자 하고 또 그 길을 걷고자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은 때로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가끔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자신의 주위를 돌아볼 수 없을 때, 자신에 대한 자부심 없이 마치 다른 이처럼 살아가고자 할 때, 우리는 쉽게 어리석은 생각들을 하게 되고 또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슬기로운, 지혜로운 삶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물론 종교적으로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길은 생명을 향한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평범하게 생각해 보아도 그리 틀린 말처럼 들리지는 않습니다.
복음은 그것을 조금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 겉으로 보기에 군중들의 반응처럼 거북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지극히 성찬례와 관련된 표현입니다. 지금 우리가 미사 안에서 예수님의 몸과 피인 성체와 성혈을 함께 나누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말씀은 이해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지혜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지혜라면,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누는 것 역시 그 지혜의 길입니다. 지혜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이끄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나누는 것은 생명을 선사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혜의 길을 걷는 이들이 생명이신 하느님을 향해 갈 수 있는 것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빵’을 먹는 이들은 그 안에 머물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멘토’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자신이 모범으로 삼고 또 삶에서 자신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또 한편으로 이 말에서 사람은 혼자보다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더 현명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위의 훌륭한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에게 지혜로운 길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성경의 말씀들이 쉽고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의 길이고 또 생명을 향한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조금 더 말씀을 가까이할 수 있다면, 단지 성당에서 듣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안에서 그것을 따를 수 있다면,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네 혀는 악을 조심하고, 네 입술은 거짓을 삼가라.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고 또 찾아라.”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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