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소막 유물관’은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를 기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자연히 용소막 유물관 소개는 선 신부가 남긴 발자취와 연결된다.
선 신부는 서울 가톨릭대학교 교수 시절, 1955년부터 1960년까지 서울 가르멜여자수도회 고해신부로 있었다. 선 신부는 여자들 중에 순수한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교회사가 오기순 신부의 회고에 따르면, 선 신부는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수도회’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여타의 전교 수도회를 하나 더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고, 성가정을 닮은 수도회를 구상했다. 때문에 영육간에 건강한 젊은 여성으로서 성경을 읽고 기도할 수 있으면 누구에게나 입회의 문이 열려 있길 원했다. 그러면서 오기순 신부에게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며 9일 기도를 몇 차례씩이나 거듭한 후에 서로의 의견을 나눈 결과,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했으므로 하느님의 뜻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수도회를 창설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성모영보수녀회다.
선 신부는 사실 수도자가 되길 원해서 신학생 때 신학교를 자퇴한 적이 있었다.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해 평생 하느님을 섬기는 봉쇄수도자가 되길 원했었다. 그러나 부친의 꺾을 수 없는 반대에 부딪혀 신학교에 재입학하게 된다. 이렇듯 수도생활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수도회를 창설했을 때, 회헌과 회칙은 물론이고 회헌 노래 및 수도회 배지(마크)까지도 손수 만들었다. 배지는 성경을 펼쳐놓은 모양으로서 하느님 말씀을 상징한다. ‘ㅊ’은 천주님의 첫 자음으로 하느님을, ‘ㅅ’은 성모님을 뜻한다. 흰색 바탕은 믿음을 상징하며 가장자리 보라색 테두리는 희생 극기를 뜻한다. ‘ㅊ’의 윗부분 빨간색은 사랑을, 가운데 ‘ㅡ’ 하늘색은 관상을, 초록색 ‘ㅅ’은 희망을 상징한다. 단순한 모양의 수도회 배지 하나에 수도회 영성 전부를 담아냈으며, 자신의 이렇듯 심오한 영성을 몸소 살았다.
선 신부는 성경을 사랑한 나머지 성경에 나오는 새나 식물들을 직접 기르길 좋아했다. 한 예를 들자면, 여러 가지 새들을 신학교 연구실에서 길렀는데, 그 즈음 일본에서 메추라기 열풍이 불고 있었다. 이런 열풍은 한국에도 불어왔고 평소에 새를 좋아하던 선 신부는 메추라기를 본격적으로 기르기 시작했다. 연구실이 비좁아서 신학교 후원(현 테니스장)에 메추라기 사육장을 만들어 놓고 그 규모를 확장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메추라기 사육은 성경을 번역하고 출판하는 비용을 충당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달걀 한 줄 10개에 110환 했는데 메추라기 알은 1개에 170환이었다.
지금 들으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보양식으로 좋다는 매스컴의 선전에 많은 사람들이 메추라기 알을 사려고 했다. 선 신부의 경제 감각은 그가 일본에서 경제학을 공부해서 얻은 것이라기보다는 선친으로부터 이어받은 것 같다. 선 신부의 선친은 그 옛날에 목재상과 양조장 등을 운영하며 든든한 재정상태를 유지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큰 기여를 하며 살았다.
선 신부가 수도원을 구상하고 있을 즈음에 바로 메추라기 열풍이 불었다. 1958년부터 젊은 처자들이 모여와서 선 신부의 메추라기 사육을 도와주며 그의 영성을 자연스럽게 배워나갔다. 1960년 3월 25일에 창설된 성모영보수녀회는 이렇게 메추라기 사육을 도와주던 몇 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시작됐다. 그래서 선 신부를 잘 아는 신자들은 성모영보수녀회를 ‘메추라기 수녀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공동번역 시절, 선 신부와 문익환 목사 사이에 얽힌 일화가 있다. 두 분 모두 성경분야에서 권위 있는 분들이면서 자신의 학문적 관점이 뚜렷한 분들이었다. 공동번역 위원으로 위촉됐을 때, 두 분 각자에게 주변에서 상대방 고집이 대단하니 미리 각오를 하라고 귀띔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두 분이 함께 일을 하다 보니 고집이 문제되지 않았다. 공연히 비전문가들이 전문가의 전문성을 몰라보고 이래라저래라 섣불리 간섭할 때 ‘거룩한’ 고집이 나오는 것이지, 전문가들 사이에는 너무나 잘 통해서 전혀 문제될 리 없었다. 문 목사에 따르면 문제는 단 한 가지, 선 신부가 너무 겸손해서 문 목사가 손아래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양보하는지라 그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용소막 유물관에는, 선 신부의 생명과도 같았던 구약성경 번역원고와 예루살렘에서 고고학을 연구할 때 수집한 여러 가지 진귀한 자료들이 있으며 그밖에도 그의 삶을 보여주는 유품들이 소장돼 있다. 이런 유품들 중에는 그가 즐겨 듣던 많은 외국 클래식 LP판은 물론이고 그 당시 유행하던 가요 LP판도 수십 장이 있다. 지금은 보기 드문 유물인 ‘호야’를 보면, 이렇게 흐릿한 등불 아래서 히브리 성경과 씨름하며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한 선 신부의 수고에 다시금 고개를 숙이게 된다.
용소막 유물관은 충북 제천 배론성지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정도의 거리에 있으며 평소에도 순례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선종완 신부의 묘지는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본원이 있는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에 있다.
※문의 010-8647-3166 용소막 유물관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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