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교구, 방한 이후 변화 시도
사회적 약자 위한 상설미사
가난한 이 돕는 통장 개설 등
사제들부터 쇄신 노력 앞장
사목교서에도 교황 뜻 반영
삶에서의 행동 실천 독려
쇄신 이끌어내기 어려운 현실
교회 깊숙히 물든 물질주의
가난한 교회 구현에 걸림돌
교회 전 구성원 변화하도록
서로 연대하는 길 모색해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 관해 한국교회 전반은 “보다 구체적인 변화와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라고 평가한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의 말을 빌면 “교황 방한은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를 향한 ‘사랑의 매’이자 ‘등대’였다.
한국교회가 쇄신의 필요성을 인지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교황 방한을 앞두고 가톨릭신문이 기획보도한 ‘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 교회쇄신, 300인에게 물었다’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변화와 쇄신을 필요로 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82%에 달했다.
교황 방한 당시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강우일 주교도 교황 환영사를 통해 “복음적인 교회 공동체를 만들었는지 성찰하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황석모 신부는 교황과 수도자들과의 만남에서 “우리는 쇄신을 통한 적응보다 세속주의와 타협함으로써 우리의 신원과 카리스마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장본인”이라고 성찰했다.
교황을 맞이하는 준비와 방한 일정 등이 내적 쇄신과 외적 연대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하는데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방한 일정이 끝난 후, ‘일어나 비추어라’(교황 방한 주제어, 이사 60,1)라는 메시지가 가시적으로 구현된 모습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각 교구별 노력이 희망의 씨앗
교황 방한 이후 펼쳐진 쇄신의 노력 중 가장 고무적인 움직임은 사제들이 교황의 권고에 관해 공부하고 토론하고 연대하고자 나선 시도들이었다.
대표적으로 서울대교구 사제들은 교회 쇄신의 중요성에 공감, 교구 차원의 대응방안과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사제토론회’를 제안하고 분기별로 열고 있다. 현재 상설 봉헌하는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미사’도 이 토론회 결과 중 하나다.
특히 청주교구 사제들은 교구민 설문조사를 통해 교구민들의 바람을 직접 들은 후, 자신들이 우선 실천할 바를 논의했다. 부산교구 사제단은 특별히 물질주의를 경계하면서 각자 사제 신원에 어울리는 차량을 갖기로 마음을 모았다. 마산교구 사제들도 ‘가난한 사제’를 지향, 미사예물의 10%를 자선비로 모아 지역불우이웃을 돕기로 결의했다. 또 은경축 행사를 하지 않고, 축일행사 등도 간소화하는 등 사제들부터 청빈한 자세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안동교구 사제들은 매월 1인당 1만 원씩 기금을 모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기로 하고, ‘희망 통장’을 개설해 현재 모금을 진행 중이다. 전주교구의 경우 ‘낮추어 살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밖에도 대구대교구와 마산·의정부교구 등은 교황이 방한 당시 전한 메시지들을 2015년 사목교서에 반영, 교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 교구들은 성탄과 부활 판공 교리 등을 통해 교구민들이 교황의 메시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각 교구와 본당, 기관단체별로 사회교리 교육을 강화하고, 사회 현안을 그리스도교적 시각에서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는 강연 등도 마련하고 있다.
아울러 예수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프란치스코 기금’을 마련한 것도 관심을 모은다.
하지만 이렇게 고무적인 활동들이 현재 일부 교구 혹은 사제들을 중심으로만 펼쳐지고 있어 아쉬움을 더한다. 교황의 권고를 비롯해 교회 각계의 다짐과 실천들이 일반 신자(대중)들에게 널리 퍼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지난 한 해 한국교회 안팎에서 드러난 문제점이었다.
왜 변화가 뚜렷하지 않은가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우선 “‘새로운 복음화의 삶으로 회심’하기 위해 세속화되어가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고, 진정한 쇄신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진 못했다”고 지적한다. 방한 이후 “쇄신에 대한 열의도 많이 식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토로했다.
교회 쇄신이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는 원인에 관해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사제와 평신도 모두가 물질주의, 편의주의 등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서철 신부(청주교구 사목국장)도 “누구도 ‘나는 안락함을 추구한다’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미 그 자리에 안주하고 있는 모습이 만연하다”고 전한다.
교황이 촉구한 쇄신과 개혁의 핵심주제는 ‘가난’과 관련이 있다. 가난을 지향하지 않는 쇄신은 알맹이가 빠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도 이미 스며든 세속화가 물질주의를 거슬러 가난한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주원준 박사(평신도 신학자,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는 “한국교회는 너무 바쁘다”고 지적한다. “교황의 방한과 메시지들은 한국교회 역사에서 매우 필요한 것이었지만, 정작 각 교구와 본당 등은 너무 많은 일과 계획들을 진행하고 있어 교황의 메시지를 익히고 실천할 틈이 없는” 현실을 환기한 것이다.
무엇보다 교황이 남긴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노력도, 여럿이 함께 모여 쇄신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우리가 처한 현실을 여실히 토론하고 연구하는 장이 부족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황 방한 이후 공동체가 함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끄는 노력, 위에서부터 쇄신을 독려하고 힘을 실어주는 노력도 더해지질 못했다.
개개인이 단순히 작은 자동차를 타고, 골프 등 사치스런 취미활동을 그만두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저금을 하는 등의 노력으로는 한국교회가 근본적으로 복음적 쇄신을 이루기 요원하다. 물론 개개인이 스스로 나서지 않고 누군가가 주도하는 변화로는 근본적인 쇄신을 이루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교회 구조상 개인의 노력으로 쇄신을 이끌어내긴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근덕 신부(수원교구 복음화국장)는 “한국교회의 수직적인 지배 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교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고 밝혔다.
전원 신부(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부소장)는 “교회 전반이 함께 변화하도록 노력해야 개개인도 힘을 얻을 수 있고, 지속적으로 교회 쇄신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혼자서는 교회 뼛속까지 스며든 세속주의의 ‘달콤한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기에, 서로 연대하고 힘을 주고받으며 쇄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교회가 복음적 쇄신의 길을 힘차게 걷기 위해서는 누가 먼저 변화해야 하는가.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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