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샤를 드 푸코(1858~1916)는 사막 오지에서 기도하고 관상하는 은수자임과 동시에 선교사로, 삶으로 하느님을 전한 영성가다.
군인이었던 푸코는 바르지 못한 행실로 휴직처분을 받을 정도로 방탕한 삶을 살면서 하느님을 멀리했다. 그런 그가 하느님을 찾게 된 것은 아프리카 탐험 중 이슬람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으면서다. 이후 “하느님, 만일 당신이 계신다면 제가 당신을 알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푸코는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통해 일생을 바쳐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회심한 푸코는 성지 순례를 하던 중 특히 나자렛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했지만 예수를 따라 나자렛에서 생활하기로 마음 먹고, 나자렛 글라라 수녀원의 잡역부로 일하며 기도와 복음묵상에 열중했다. 수녀원장의 권유로 신학을 공부한 그는 43세에 사제품을 받았다.
나자렛에서의 삶으로 예수를 따르고자 한 푸코였지만 사제가 된 그는 성지가 아닌 사막을 향했다. 어느 사제도 간 적 없는 곳을 찾아가 잃어버린 어린 양들에게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끼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생각 안에서 푸코의 나자렛 영성은 성지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버림받고 가난한 사람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푸코의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침묵 중에 드러내는 선교였다.
그는 복음을 선포하기 전에 그들의 문화와 상황을 파악하면서 그들의 생활방식에 따라 살아갔다. 토착민들의 언어를 그들보다 더 연구했고, 그들 안에 녹아들기 위해 미사 없이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복음을 향해 있었다. 이슬람교가 퍼져있는 지역에서 그리스도를 싫어하는 토착민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축복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언어인 테마세크어로 복음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푸코는 사막 토착민들 사이에 머물며 그들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의 친구가 돼줬다.1916년 죽음에 이르기까지 푸코는 사막에서 기도하고 토착민들과 함께 살아갔다.
푸코가 사막에서 죽은 후 그의 영적인 영향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의 생전에는 따로 제자나 수도회원이 없었지만, 그의 사후인 1933년에 ‘예수의 작은 형제회’가, 1939년에는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가 생기면서 푸코의 영성을 따르는 삶을 사는 이들이 늘어났다.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는 1955년에, ‘예수의 작은 형제회’는 1969년에 한국에 들어왔다. 교구에는 안산 단원구에 ‘예수의 작은 형제회’ 수원 분원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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