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메르스의 공포가 가시지 않았던 7월 초 한 신자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메르스의 여파로 병원방문을 꺼리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폐암으로 선종한 고인의 장례미사에는 많은 신자들이 참례했다.
미사는 교구장 이용훈 주교의 주례로 봉헌됐다. 고인이 교구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고인은 1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교구에 기증했다. 교구가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프리카 잠비아에 학교를 설립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교구 전체는 물론이고 자신의 본당에서조차 주임신부 등 몇몇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용훈 주교가 장례미사 강론을 통해 “고인은 그 많은 유산을 자녀들에게 남기지 않고 아프리카에 기증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었다”고 말하자 미사에 참례한 모두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어떤 신자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에도 늘 검소한 생활을 했다. 임종을 앞두고도 전셋집에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본당에서도 많은 봉사를 했고 나눔을 실천하는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그런 고인의 자녀이기에 그런지 아들과 며느리의 효심도 지극했다. 메르스가 한창인 와중에도 낮에는 며느리가, 저녁에는 아들이 병수발을 들었다. 집에 어린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였음에도 아버지의 병수발에 소홀함이 없었다. 오히려 아들과 며느리는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고인은 잠비아의 어려운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 해주는 큰 유산을 남겼다. 하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남겨진 유산이 없다. 아버지가 모든 재산을 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기증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부부에게 “유산이 아깝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상속자가 아닌 기자가 느끼기에도 유산으로 받을 수 있던 ‘100억’이 사라진 것은 아깝게 느껴졌다.
되돌아온 것은 미소였다. 이들 부부는 이미 아버지가 전 재산을 잠비아에 기증할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님의 뜻을 존중했다”면서 “아버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뤄드리는 것이 자식으로서 도리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병수발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도 웃으며 고인의 뜻을 존중한다는 자녀를 보면서 유산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과연 100억 원을 상속받는 것이 값진 유산일까. 오히려 돈을 받는 것보다 100억 원을 기증하는 아버지의 뜻에 웃으며 따를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값진 유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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