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에게 던져진 교황의 이 한마디, ‘웨이크 업’(wake up)에는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청년들이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함께 일어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교황 방한 1주년을 맞아 열린 ‘젊음의 가톨릭독서콘서트’(이하 청년 독서콘서트) 현장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었다. 그 현장으로 가보자.
■ ‘웨이크 업’이란?
“나에게 익숙했던 것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웨이크 업’이 아닐까요. 이를 위해서는 내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진슬기 신부)
“내가 당하는 고통에 의미가 있고, 내가 이런 모습으로 태어난 데도 의미가 있다고 믿으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이것이 ‘웨이크 업’이 아닐까요.”(공지영 소설가)
“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음악·역사 등 다양한 지식을 쌓았지만,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서라는 걸 군대에서 깨달았습니다. 군대에서 ‘웨이크 업’ 한 거죠. 거기선 전우와 경쟁하거나 제압할 필요가 없잖아요.”(조승연 작가)
8월 6일 오후 7시30분 서울 명동성당 2층 꼬스트홀. 세 명 패널들의 재치 있는 입담이 펼쳐지자 곳곳에서 탄성이 이어진다.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회장 김정동, 지도 김민수 신부)가 마련한 청년 독서콘서트 풍경이다.
‘너, 나, 우리, 웨이크 업’을 주제로 열린 이번 청년 독서콘서트에는 청년들의 사랑을 받는 진슬기 신부(서울대교구)가 청년 신부로, 공지영(마리아) 소설가가 청년을 키우는 부모로, 세계문화전문가 조승연 작가가 패널로 나섰다. 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웨이크 업’이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신념은? ▲함께 ‘웨이크 업’ 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 등을 주제로 유쾌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해법을 풀어냈다.
진 신부는 “교황님의 강론과 설교 안에 일관되게 흐르는 요소는 ‘기쁨’”이라며 “교황님의 ‘웨이크 업’은 기쁨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쁨을 전하기 위해선 상대방에게 웃음의 효과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며 “바보 같이 보이더라도, 내가 먼저 상대방 면전에서 히죽 웃는 것”이라고 말했다.
▲ 8월 6일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린 ‘젊음의 가톨릭독서콘서트’ 패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세계문화전문가 조승연 작가, 공지영 소설가, 서울대교구 진슬기 신부.
■ 지지와 연대
김민수 신부(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의 시작기도로 본격적 행사의 막이 올랐다. 참가자들은 정성껏 기도에 동참했다.
유경촌 주교(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위원장)는 격려사를 통해 “지난해 교황님은 청년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말라고 희망과 힘을 실어줬다”며 “교황님을 기억하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위로와 희망을 다시 발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도 축사를 보내 “이번 행사를 통해 교황님의 한국 방문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열의를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 김정동 회장은 인사말에서 “우리 모두 연대하고 일치해 그리스도의 평화가 무엇인지 보여주자”고 격려했다.
이 밖에 가톨릭언론인협의회 이상요 회장, 가톨릭신문출판인협회 김선동 회장,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 박희성 회장 등도 응원의 마음을 담아 청년 독서콘서트 개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 모두가 토크의 장으로
토크콘서트, 퍼포먼스, 나눔과 소통의 시간 순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400여 명의 청년들이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행사 중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웨이크 업’과 고민거리 등을 메시지로 담아 보냈다. 너도나도 보내는 메시지들은 사회자를 거쳐 패널들에게 전달됐다.
“타종교 친구들과 함께 ‘웨이크 업’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물은 한 참가자의 질문에 진 신부는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황 말씀대로 복음을 사는 방법 밖에 없다”고 답했다. 아울러 “연인의 대화는 이성적이지 않다”며 “더 이상 그들과 논박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교 신앙을 기쁘게 살아내자”고 말했다.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뜨거운 열기를 더해갔다. 오명근(바오로·27·서울 대방동본당)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웨이크 업’을 참가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용기 있게 자리를 박차고 패널들 앞에 섰다. 오씨는 “하느님께서 우리에 대해 뚜렷한 목표를 가졌듯이, 그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 진정한 ‘웨이크 업’”이라며 “하느님의 말씀에 호흡하며 살겠다”고 말해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 청년 독서콘서트 참가자들이 둘씩 짝지어 각자 생각하는 ‘웨이크 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우리의 고민, 취업
세 명의 패널들은 취업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신음하는 청년들에게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고 사회를 바꾸어나가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와 풍습을 체득한 조승연 작가는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세계는 하나가 되고 있다”며 “세상은 더 이상 일자리를 그냥 만들어 주지 않는다. 우리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내가 저것을 고치겠다’고 나서면 ‘같이 고치자’고 나서는 사람들도 100명, 200명이 된다”며 “그것이 조직이고 일자리”라고 말했다.
청년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이기도 한 공 소설가는 “내가 아무리 영어를 공부하고 토익점수를 잘 받아도 국가 전체가 몰락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시급·최저임금·육아문제들을 도외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취업 걱정에 힘들어 하는 청년들에게는 새벽미사에 참례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진 신부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하느님의 은총에 가능성을 걸어보자”고 독려했다. 이어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려 설명하기에 앞서 ‘아, 그랬군요. 당신의 힘든 점을 이해합니다’라고 공감하는 교황님 같은 어른이 되겠다”고 말해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 맛깔나게 양념된 연주와 공연들
포크 록밴드 써드체어의 연주는 참가자들의 흥을 돋우는 데 한몫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서먹서먹하던 분위기는 단번에 사라졌다. 참가자들은 리듬에 맞춰 어느새 독서콘서트의 열기로 빠져들었다.
세 패널들의 토크콘서트에 이어 ‘젠(GEN)&일치를 위한 새 젊은이 운동 한국본부’가 선보인 국기 퍼포먼스는 참가자들에게 ‘하나 된 세계’를 보여줬다. ‘젠 베르데’(포콜라레 종합 예술단체)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 민순신(마리아 레지나)씨는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불러 청년들을 응원했다.
아울러 참석자들은 행사장 뒤편에 걸린 현수막 위에 정성스레 교황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적었다.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는 향후 바티칸을 찾아 수요 일반알현을 통해 교황에게 직접 이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 ‘젠(GEN)&일치를 위한 새 젊은이 운동 한국본부’가 국기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총 20개의 국기를 엮은 색색의 천 조각은 참가자들에게 ‘하나 된 세계’를 보여줬다.
■ 아쉬움, 그리고…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해 이웃과 사회를 향해 깨어있을 것을 당부한 프란치스코 교황.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여파로 청년들의 몸과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진짜 ‘나’의 모습과 꿈을 찾는 일도 늘 뒷전이었다.
교황 방한 1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행사는 기쁨과 슬픔, 좌절과 시련 속에서 굳건히 앞서 나간 선배들의 경험을 통해 청년들 모두 깨어 나갈 길을 다짐하는 은총의 시간이었다.
또 다른 참가자 이주연(카타리나·원주 학성동본당)씨는 “‘웨이크 업’에 대한 의미를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 자리를 통해 1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나부터 변화되고, 주변 사람들의 변화를 일으켜 더불어 잘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청년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이런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