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음’은 하느님 앞에서 작은 것이고 또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무한한 자비에 완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가난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구원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6월 프란치스코회(O.F.M/Order of Friars Minor) 세계총회 참석자들과의 만남에서 한 말이다.
최근 전 세계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덕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에 가까이 갈 기회를 더 자주 얻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 앞에서 작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해야 진정 가난하게 사는 것일까?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구현에 힘쓰고 있는 한국교회가 더욱 관심을 갖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호에서는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 회원들의 삶과 영성을 통해, 보다 더 가난한 삶을 선택하고 진정한 평화운동을 펼친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우리 삶 안으로 끌어와보자.
가장 우선적 선택
경남 산청 성심원(원장 오상선 신부)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 사이엔 최근 새로운 신바람이 불어 들었다. 바로 시를 읽고 수필을 읽고 서로 대화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면, 수십 년간 투병의 고통과 외로움을 겪으며 마음속에 꽁꽁 묶어둔 속내를 하나둘씩 풀어헤칠 수 있었다. 차츰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발적으로 시를 짓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지난 4월엔 시집도 출판하며 삶의 활력을 더하고 있다.
성심원은 오랜 시간 한센병 환우들의 삶터로 자리해왔다.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관구장 호명환)는 6.25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성심원을 짓는데 전력을 쏟았다. 환우들을 무조건 사회와 격리시키고 치료만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온전한 가정공동체와 친교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 있도록 회원들이 늘 함께하며 내·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점차 한센병 환우들이 줄어들면서, 현재는 이곳에서 한센병 환우들과 중증장애인 어르신들 141명을 돌보고 있다.
서울 제기동 ‘프란치스코의 집’(책임 황보성윤 수사)에서는 하루 평균 300~400여 명의 무의탁 어르신과 노숙자 등이 식사를 한다. 작은 형제회 회원들은 1988년부터 이곳에서 한 번도 밥상을 없앤 적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누구보다 약자인 이들이 굶주림에 길거리를 헤매게 둘 수 없는 마음에서다. 밥값은 딱 200원. 누구든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매긴 값이다. 노숙자들의 허한 속이 어지간히 채워진 시간이면 빈민식당 위 쉼터가 복작댄다. 회원들은 쉼터에서 매일 상담과 목욕, 빨래 서비스를 제공한다. 분야별 전문봉사자들과 함께 요일별로 이발과 한방ㆍ양방 진료, 투약, 치매 예방 교육 등도 지속하고 있다.
서울 중림동 한사랑가족공동체(대표 윤석찬 신부)는 노숙자들이 배만 채우고 가는 사랑방이 아니다. 이곳을 찾은 노숙인들은 몸과 마음을 치유 받을 뿐 아니라 자립의 의지를 얻어간다. 한사랑가족공동체 대표 윤석찬 신부의 책꽂이 한켠에는 자립에 나선 ‘가족’들이 맡겨둔 통장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윤 신부를 비롯한 작은 형제회 회원들은 이곳에서 지속적인 상담과 돌봄을 통해 이들이 꾸준히 일을 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일방적이고 일회적인 나눔이 아니라, 개개인이 내외적으로 성장하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이들 곁에 머물며 지원하는 것이다.
작은 형제회는 교회 울타리를 넘어 세상 곳곳에서 ‘복음적 삶’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각각의 사도직 현장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오 25,40)라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스며든 자리다.
이뿐만이 아니다. 작은 형제회 산하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 위원회(이하 정·평·창보)는 각종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교회 안팎과 적극적인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밀양 송전탑 강제 건설 사태, 쌍용차 해고 노동자 문제 등 우리 사회 크고 작은 현안들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장에서는 언제나 정·평·창보 활동 회원들을 볼 수 있다. ‘대화위원회’의 경우 타종교들과의 소통과 친교는 물론 ‘생태영성’ 구현을 위한 대외적 협력에 적극적이다. 올바른 의식 재고를 위해 생태영성·평화 공부 모임도 꾸준히 열고 있다. 북한과 중국 동북3성 지역에 거주하는 우리 민족을 돕기 위해 설립한 후원회도 운영한다. 새터민 쉼터인 한우리공동체와 이주사목센터, 재가복지센터 등도 이 시대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닦아놓은 길이다.
작음과 겸손
프란치스코 성인이 생전에 처음으로 공동생활을 함께한 공동체는 나병환자(한센병 환우)들의 무리였다. 그는 나병환자와의 만남을 통해 본격적인 회개의 여정을 걸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성인은 역겨운 냄새와 흉한 몰골 때문에 쳐다보기도 싫은 환자에게 다가가 입을 맞춘다. 이어 나병환자들과 함께 살며 썩은 상처와 피고름을 씻어주는 가운데 ‘쓴맛’이 ‘단맛’으로 변화하는 체험을 한다. 성인은 이 체험에 관해 ‘나병환자들을 통해 자비를 얻었다’고 표현했다.
이에 앞서 성인은 관상을 통해 갖가지 불의과 거짓, 위선, 죄악, 욕망 등 하느님의 신비를 가리고 있는 마음의 어둠들로 인해 비참한 자신을 직시했다. 그러자 타인들의 딱한 현실 또한 하나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특히 가난하고 비참하고 소외된 이들 안에 계신 가엾은 그리스도를 형언할 수 없는 연민으로 관상했기에 그들을 끌어안지 않을 수 없었다. 가엾은 그리스도를 관상하면 할수록 더욱 더 어둡고 부조리한 사회 현실도 끌어안게 됐다.
그 결과 프란치스코 성인은 보다 더 가난한 삶을 선택했으며, 복음에 바탕을 둔 진정한 평화운동을 펼쳤다.
작은 형제회 관구봉사자 호명환 신부는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있어서 회개의 개념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선물로 주셨다는 선물성에 대한 인식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인간의 약함을 수용할 때 우리는 그분의 완전한 사랑에 의해 엮어지기에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형제회 회원들은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작음과 겸손 안에서 섬김을 통해 사랑을 드러내고 형제애를 실천한다.
반면 일반 신자들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르침에는 공감하지만, 각자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많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물질적인 것을 기준으로 가난의 의미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가난’의 올바른 의미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은 형제회 회원들은 ‘가난’에 관해 “내가 가진 것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바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작음은 자신만의 관점과 논리를 떠나고, 자신에게 유용하고 편리한 것을 넘어서 궁핍한 이들을 위해 순수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것이다.
회원들은 “내가 가진 것들이 하느님께 거저 선물로 얻은 것들임을 인식한다면, 이웃과도 풍성하게 나눌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난을 실현하는데 있어서는 무엇보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수도원 운영에서도, 아무것도 없이 빈털터리로 수도생활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1만 원을 갖고 있을 때 9000원을 수도회 활동에 쓰고 1000원만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나누는 것이 아니라, 1만 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쓰는 것이다.
특히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품고 있는 오만함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을 지니고서는 사랑을 실천하기 어렵다. 이런 이들은 나눔을 실천하더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라고 고백하지 않고 생색을 내고 자신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 윤석찬 신부는 “사랑의 전제조건은 바로 겸손함, 작음의 실천”이라면서 “그 겸손과 작음 안에서 더욱 큰 것을 채워주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전한다.
아울러 호명환 신부는 “프란치스칸들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복음적 삶’이란 프란치스칸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곳곳에서 실천해야할 몫”이라면서 “‘복음적 삶’은 세상 안에서의 삶이고,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만나고 나누는 것이기에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응시해야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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