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존경하는 아버지는 공군에서 34년간 복무하신 준사관 출신 군인이셨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보았던 푸른 군복의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남자답고 멋있는 분이셨죠. 제가 장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육사에 지원하게 된 것도 사실은 제 인생의 길잡이이자 버팀목인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지난달 7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으셨습니다. 평소에 잔병치레 없이 정정하셨기에 많이 걱정했습니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산소마스크를 통해 거친 숨을 쉬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뵈니, 제 삶에만 바빠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러웠습니다.
며칠 후 일반 병동으로 옮기신 아버지께 면회를 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게 “부대 일로 바쁠 텐데 왜 왔냐?”며 빨리 학교로 돌아가라고 재촉하시더군요. 그러시며 “네가 있어야 할 곳은 환자로 가득한 병실이 아니라, 생도들이 너를 기다리는 육사 교실이다. 얼른 돌아가서 네 임무에 최선을 다하라”며 다그치셨습니다. 편찮으신 몸에도 자신보다 아들을 먼저 걱정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몸 둘 바를 몰랐고, 존경받는 교수가 되기 위해 정진하라는 말씀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께서 당부하신 말씀을 오래도록 곱새겼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고심한 끝에 제가 해야 할 일을 수첩에 차례차례 적어 내려갔습니다.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주님 뜻에 따라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고, 육사 생도들과 장병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의 신앙생활을 정성껏 지도하겠다. 나는 가장으로서 작은 성소인 가정을 생명과 사랑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하느님 은총이 충만한 성가정을 가꾸겠다. 나는 육사 교수로서 투철한 사명감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생도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실시하여, 그들이 호국의 간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리고 군이 내게 부여한 소임에 최선을 다해 훌륭한 스승, 연구하는 군인 학자, 모범적인 장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수첩에 빼곡히 적힌 글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있어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병원 1층 성당에서 어머니와 미사를 드리며 아버지의 쾌유를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제 기도는 세속의 욕심과 영광만을 위한 기도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부모를 위한 기도’와 ‘병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며, 진심으로 모든 부모님과 병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주님의 은총으로 다시 일어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느님께서 제게 맡기신 소명에 따라 살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부족한 저의 삶을 극복해 주십사 주님께 의탁했고, 제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아버지께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