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남 수도권을 관할하는 교구는 그 넓이만큼이나 다양하고 특별한 장소들이 많이 있다. 신앙선조들의 삶의 자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이나, 오늘을 살아가는 신자들의 삶의 터전, 교구 신자라면 한번쯤 가보면 좋을 만한 신앙의 명소 등. 가족, 연인과 함께하는 나들이로, 혹은 나만의 피정시간으로 우리 교구 이곳저곳을 찾아보면 어떨까. 가톨릭신문 수원교구는 새로 연재하는 ‘우리 교구 이곳저곳’에서 교구 내에 찾아 볼만한 장소들을 찾아 소개한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를 살짝 벗어나니 어느덧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잦아진다. 우거진 녹음에 방금까지 도시 한복판에 있었다는 사실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미 세속을 떠난 느낌이다. 청계산과 광교산 자락이 맞닿은 곳. 여름의 녹음으로 뒤덮인 아담한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신앙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며 지친 몸과 영혼을 쉬어갈 수 있는 곳, 하우현성당(경기도 의왕시 원터아랫길 81-6)이다.
성당에 먼저 들어선다. 수많은 성당을 드나들었지만 이 성당은 조금 낯설다. 먼저 신을 벗어야 한다. 요즘 성당과 달라 보기에는 좀 낯설었지만 막상 앉아보니 오히려 친숙하다. 하느님의 집 안방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다. 예수님과 함께 차라도 한 잔 나누고 싶은 정겨움이 든다.
성당에서 나오니 가슴에 십자가를 든 사제의 동상이 인자한 표정으로 오가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한국 이름 ‘서몰례(徐沒禮)’)의 상이다. 박해시기, 이곳은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볼리외 신부는 성당에 인접한 청계산 중턱 둔토리 동굴에 숨어서 한국어를 익히고 밤마다 교우들을 찾아 사목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했다. 하우현본당은 1982년 본당주보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함께 볼리외 신부를 두 번째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성당에서 출발해 2시간가량 등산로를 따라가면 볼리외 신부가 숨어지내던 동굴을 볼 수 있다.
볼리외 신부 성상 뒤로 고즈넉한 건물이 보인다. 한자로 사제관(司祭館)이라 적혀있다. 성전이 서양식 외부와 동양식 내부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1906년에 세워진 사제관은 외관에서부터 동서양의 양식이 어우러진다. 사제관 외벽은 서양식 석조로, 지붕은 한국식 기와를 얹은 모습이다. 20세기 초반에 동서양 건축기법이 혼용된 것도 드물 뿐 아니라 건물 자체의 건축사적 가치가 높아 2001년에는 경기도 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우현성당의 아름다움은 자연과 건물의 아름다움에서 그치지 않는다. 넓은 성당 부지에 걸쳐 수놓듯 놓인 각종 성물들은 신자들을 하느님과의 대화로 이끈다.
성당 우측 숲속에 자리한 십자가의 길에서는 한 부부가 기도하고 있었다. 십자가를 진 예수를 바라보는 부부의 표정이 얼마나 깊이 예수의 고통을 묵상하는지 느끼게 해줬다. 사람 크기와 비슷한 동상들이 마치 움직이듯 십자가의 길을 만들고 있어, 그리스도 수난의 현장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성당 부지를 따라 나무계단으로 나무 조형물이 늘어선 길이 이어진다.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저 아이야말로 이 길의 참된 의미를 찾았을지 모른다. 유봉옥(제노베파) 작가가 제작한 나무 조형물들은 묵주 한 알 한 알이다. 성모(聖母)의 손을 잡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묵주기도를 위한 길이다.
묵주기도의 길을 지나니 카페가 보인다. 본당이 운영하는 ‘하우현 카페’다. 카페는 성당을 찾은 순례자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본당의 카페가 본당공동체를 위한 휴게공간이라면 이곳 카페는 순례자들을 위한 쉼터다. 본당의 교적 상 신자는 200여 명에 불과하지만 매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례자들이 영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몸도 쉬어갈 수 있도록 카페를 마련한 것이다. 카페에서는 커피나 전통차뿐 아니라 여름에 어울리는 시원한 빙수도 먹을 수 있어, 비신자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 매일 평균 40여 명이 이 카페를 이용한다고 한다.
성당처럼 좌식으로 된 카페에서 차 한 잔을 청했다. 자연에 둘러싸여 기도하고 차를 마시니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회복되는 기분이다.
본당은 순례자들의 영적 충전을 위해 다양한 신심행사도 실시하고 있다. 매주 화·수·목요일 오전 11시 미사 후에는 기도회를 열고, 매월 첫 토요일 오전 11시에는 성모신심미사를 봉헌한다. 또 매주 목요일 오후 11시에는 성시간을, 금요일 오후 10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3시30분까지는 성령철야기도를 진행한다.
성당에서 피정하며 머무는 것도 가능하다. 카페 옆 ‘치유의 집’은 순례자들이 머물며 피정할 수 있도록 마련한 시설이다. 인원은 2~7명까지 최대 2박3일간 사용할 수 있는 이 피정의 집은 순례자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단 ‘치유의 집’ 사용신청은 최소 3~4일 이전에 해야 한다.
※문의 031-426-8921 하우현본당 사무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