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생명의 빵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듣습니다. 지난 4주간 동안 들었던 긴 이야기의 마지막 결론격인 단락이지만 그렇게 희망적으로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조차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은 예수님 당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빵을 먹고 예수님 안에 머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거북했던 많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납니다. 믿음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어렵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사람들은 흔히 성경에, 복음에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들 만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꽤 많은 부분은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 있는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위로를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도 합니다. 나태한 모습을 버리라고, 더 열정을 가지고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지 말고 어려운 이들에게 손을 내밀라고 요구합니다. 여전히 이런 말씀들은 우리에게도 불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우리에게 결단을 내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의 곁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만 합니다.
에페소서는 예수님과 머물러 있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낯설지 않게 사용되었던 것처럼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남편과 아내의 비유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의 백성이나 교회는 여인의 표상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시각으로보면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여성을 폄하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믿는 이들과의 관계입니다.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보여주신 것처럼 그들에게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머리이시고 믿는 이들은, 그들이 모인 교회는 그분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기의 말씀 역시 가나안 정복 후에 다진 결의를 보여줍니다. 지난 시간 동안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이들을 되새기며 그분만이 하느님이심을, 그리고 그분을 따르겠다는 다짐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신앙의 결단’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길과 세상의 길에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선택해야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아주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서 인생의 향방을 결정하는 일까지 우리 앞에는 항상 선택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하나를 선택한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 많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갑니다. 지나간 시간은 이런 선택들로 이루어진 나의 역사입니다.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금 당장은 알기 어렵지만, 그 선택이 믿음에 근거한 것이기를, 생명을 향한 것이기를,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있는 것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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