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소문 순교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서소문 밖은 바로 임금의 궁성이 있는 한양의 공식 처형지였다. 사형수는 크게 모반죄와 일반 범죄로 나뉘었는데, 그중 모반죄의 경우는 형장이 일정치 않았지만, 나머지 사형수들은 주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형이 집행됐다. 또한 서소문은 광희문(남소문)과 함께 도성 안의 시신을 밖으로 운반할 수 있는 시구문 역할을 했으며 칠패 시장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으로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 있는 효과도 있었다. 최종 판결을 내리는 형조나 의금부와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형장으로는 아주 적격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서소문 순교성지는 신유·기해·병인박해를 거치면서 수많은 순교자들을 탄생시켰다. 한국의 103위 성인 중 44위와 27위의 복자를 비롯해 수많은 순교자들이 순교한 곳이다.
서소문 성지가 내려다 보이는 약현 언덕에는 124년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벽돌 성당인 중림동약현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중림동약현성당은 서소문 성지의 기념성당으로서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기리고 본당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이하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 7월 설계에 들어가 1년 2개월여 만에 완공된 전시관은 전시실과 미디어룸, 강당,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전시실은 ‘박해시대와 서소문 순교 성지’, ‘중림동본당 역사’ 등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박해시대와 신앙의 자유 시대가 단절된 역사가 아니라 수많은 순교자들을 낳은 박해로 인해 신앙의 자유가 찾아온 것임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서소문 순교성지 소개로 시작하는 전시실은 서소문에서 순교한 순교자 소개와 성인 초상화, 고 탁희성 화백의 순교 성화 등이 전시돼 있는 박해시기 전시물과 중림동약현성당의 지난 124년 역사를 소개한다. 또한 1998년 중림동약현성당에 발생한 화재 사진과 화마에 손상된 성모상, 제대, 종탑 부속품도 볼 수 있으며, 중림동약현본당 출신으로 1923년 사제품을 받은 뒤 만주 지역에서 사목하다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복역한 후 선종한 ‘하느님의 종’ 김선영 요셉 신부의 생애를 소개한 전시물도 있다.
중앙 전시공간에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정미숙(아녜스) 수녀의 작품인 닥종이 인형이 함께 전시돼 있다. 닥종이 인형은 서소문 순교성지만의 이야기가 아닌 한국천주교회사 전체를 다루고 있고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순례시에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전시관에는 지난해 8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124위 복자 시복식을 주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1984년 5월 6일 103위 시성식에 이어 지난해 광화문 광장에서의 시복식은 한국교회의 큰 축복이었다. 그 축복의 시복식을 교황께서는 서소문 성지 참배로 시작했다. 우리는 그분의 서소문 성지 참배의 발걸음을 되짚어 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우선 전시관으로 몇 계단을 올라오면 뒤로 서소문 순교자 현양탑을 배경으로 실물과 가까운 크기의 교황님이 서있다. 약현 언덕을 힘들게 올라온 순례객들은 교황님의 환한 미소를 만나게 된다. 순례객들은 그곳에서 교황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기도 한다.
교황님의 성품을 반영해 소박한 전시벽면으로 기획된 전시공간에는 교황 방한 기념주화 및 우표, 사진집 그리고 교황님이 주신 묵주, 카펫 등이 전시돼 있다. 또한 그날의 감동을 다시 살릴 수 있도록 비디오 영상 화면과 사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작은 카펫과 그 위의 발자국이다. 그런데 발자국의 위치가 조금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교황님의 서소문 방문이 결정되고 나서 서소문 성지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고심 끝에 교황님의 소박한 모습에 어울리게 교황님이 설 자리에 자그마한 카펫만 준비하기로 했다. 참배 당일 서소문 순교자 현양탑 앞의 녹색 바닥에 두드러지지 않는 연두색의 작은 카펫이 깔렸다. 교황님은 카펫의 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 한쪽 옆에 자리했다. 마치 당신 혼자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서계시는 모습이었다. 일생을 예수님과 함께 살아오신 교황님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 전시관에 전시된 그날의 카펫에는 교황님이 섰던 자리에 발자국으로써 그분의 뜻을 표현하고 있다.
서소문 성지를 찾는 많은 순례객 또한 전시관의 교황 방한 기념물을 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전시관 개방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월요일과 명절연휴는 휴관.
※문의 02-312-5220, 02-362-1891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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