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받으며 욕을 배웠다. 군대에서 공동체를 위해 도둑질을 해야 했다. 군대에서 만나지 말아야 할 망나니들을 여럿 만나게 됐다. 이것저것 생각해 보면 손해 보는 기억들뿐이다. 그러나 얻은 것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았다.
특별히 기억나는 전우들이 있지만 오늘은 잊을 수 없는 군종신부님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군종신부님이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주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동료들과 간이 칸막이로 사제와 마주하는 모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였다. 한쪽은 응어리진 것을 털어 놓아야 하고, 한쪽은 풀어 주기 위해서 마주한 것이다.
평생 도둑질 한 번 못해본 나도 군대에선 누군가를 위해 세숫대야, 장기알, 양말 등 자질구레한 것들을 훔쳐 물물교환을 해야 했다. 참으로 치사한 삶이 돌고 도는 것이 군대였다. 양심성찰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절대적인 신 앞에서는 고개 숙이고 깨끗이 청소해야 했다.
우리 동료들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고해소에 늘어섰을 것이다. 고해를 주다 말고 갑자기 군종신부님이 일어나신다.
“잠깐, 얘들아 군대에서 훔친 물건은 죄가 되지 않는다.”
이 말 한 마디에 길게 늘어선 죄인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해방된 것이다. 명쾌한 유권해석을 내려준 신부님을 이구동성으로 칭찬하고 있었다.
유격훈련은 일 년에 한 번 반드시 받아야 하는 고된 훈련이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고참도 예외없이 똑같이 뺑뺑이를 돌고 있었다. 우리의 고된 시간을 거둬 줄 수 있는 분은 군종 목사와 신부님뿐이다. 성직자들의 방문시간이 되면 훈련을 중단시키고 간단한 위로와 기도의 시간이 주어진다. 개신교 목사는 열렬한 기도로 이 시간을 극복하기를 바라면서 위로하고 가신다.
그러나 우리 신부님은 달랐다. 신부님은 담배 한 개비를 권하면서 한 명의 사병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또 그 옆에 있는 사병과도 담배 한 개비와 덕담을 나누고, 이리 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며 시간을 끌어 주신다.
보다 못한 유격 조교가 “신부님, 그만 가시죠?”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병생활을 해봤던 신부님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쏘아댄다.
“기다려, 지금 기도하고 있잖아. 끝나려면 멀었어.”
우리를 위해 시간을 끌어 주신 신부님은 목사님의 열렬한 기도 10분 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담배로 위로하러 오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모두가 감탄했다. 우리의 마음을 알아준 그 신부님을 따라서 예비신자 입교를 한 동료가 여럿 있었다. 감동적이다.
열린 교회의 모습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혜로운 판단을 내려줄 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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