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도 햄릿도 모르고 연극과는 아무 상관없이 살며 연극구경 한번 안 가는 사람들도 이게 연극대사라는 건 다 안다. 알 뿐 아니라 자조적으로, 농담으로, 흥분해서, 비난조로, 술 취해 혼자 밤길을 걸으며 하늘을 향해 늑대처럼 부르짖기도 하는 말이다. 살 건지 죽을 건지는 인간모두가 가진 딜레마, 고통, 한계, 나약함과 두려움의 한탄이고 삶의 매순간 걸려오는 우주의 태클이며, ‘죽을 각오로 살아낼까’ 아님 ‘이렇게 사느니 죽어버릴까’, 그 극단적 선택의 치열함이 버겁고 힘든 인간실존의 모습이기도 하다. 해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참 문제긴 문제인 거다.
영국 글로브극장의 월드투어 ‘햄릿’이 ‘공원은 공연 중’이라는 프로젝트로 한국의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왔다. 18개월 동안 119개의 나라에서 176회 공연, 관객 수 8만3000명. 개봉 일주일만에 6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한 시간만에 조회 수 십만의 동영상물 옆에 품은 많이 들고 실적은 조금인 이런 공연도 나란히 있는 세상이다.
최초의 문화비평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비극은 “보통보다는 훌륭한 인물이 자신의 잘못이 아닌 불의의 사건 탓에 불행으로 떨어져 공포와 연민과 함께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하는 것이라 한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주인공인 ‘햄릿’은 등장인물 모두가 불의의 사건으로 불행하게 죽는 비극이다. 아버지 왕의 급작스러운 죽음, 숙부의 왕위 등극, 어머니와 숙부의 결혼, 그 한가운데 무기력한 청년햄릿. 어느 날 밤,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나는 살해당했다, 숙부가 범인’이라는 기절초풍할 진실과 함께 ‘복수해 달라’는 처절한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복수의 상대는 막강권력. 그 앞에서 햄릿은 한없이 작다. 이제는 숙모가 된 어머니의 염려, 권력에 아부하는 무리들의 감시, 오필리어의 맑은 사랑도 햄릿을 더 작게 만드는 걸림돌일 뿐이다.
‘연극사 최고 최대의 비극’이라는 유명세에 비해 단순하고 진부하기까지 한 ‘아버지의 복수극’이 400여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거의 매일 공연되고 있는 건 왜 일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한마디의 울림. 인간의 실존이 꿰뚫리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셰익스피어와 그의 ‘햄릿’을 불멸의 존재로 만든 일등공신임에는 틀림없다.
공원에서 연극을 감상하는 기회는 흔치않다. 번거롭게 줄서서 표를 받아 그 노란 표를 또 모두 팔뚝에 차야했지만 대학로의 공원에서 연극을 보다니. 그게 세계적인 명작이라거나 우리도 선진국이라거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에 우리 신앙인이 일구어야하는 문화를 보태고 싶은 열망이 중요하다.
하늘나라를 이 땅에서 살도록 초대된 우리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우리는 보다 진지하게 고뇌해야 한다. 가톨릭 성지의 드넓은 풀밭. 햄릿과는 비교할 수 없이 치열하고 뜨거웠던 청년 황사영, 청년 김대건 신부. 그 찬란했던 삶과 죽음이 그곳에서 펼쳐진다면, 신자와 비신자가 나란히 앉아 그 공연을 관람한다면. 아마도 하늘나라를 지금여기 보여주는 새로운 문화의 모습을 일구어 가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 극작가이자 배우로서 연극 ‘꽃상여’ ‘안녕 모스크바’ ‘수전노’ ‘유리동물원’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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