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뜻하는 ‘클라라’라는 이름의 성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주님의 빛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다.
1193년 아시시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클라라는 어느 날 기도하기 위해 들른 성당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설교를 들었다. 성 프란치스코의 회개 과정을 목격했던 그는 성인의 설교에 감동했고, 마침내 1212년 성지주일 밤에 집을 떠나 프란치스코와 그의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속의 수도복’을 받아 입고 순명을 서약했다.
성녀는 이로써 프란치스코회의 첫 여성 동료가 됐지만, 형제회에 여자 수도원이 없어 근방의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머물렀다. 이후 클라라는 친동생 아녜스를 비롯해 몇몇 자매들과 함께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성 클라라 수도회의 모태가 된 복음적 가난과 사랑을 실천하는 관상 봉쇄 생활을 시작했다.
클라라는 고정적 수입을 거절하고 복음의 말씀대로 손수 일하면서 절대적 가난을 실천하려고 했다. 그는 다정한 자매요 어진 어머니로서 자매들의 기쁨과 아픔에 함께했다. 주님의 가난을 본받아 ‘가난한 동정녀’로 살았던 그에게, 성 프란치스코를 비롯한 작은 형제들은 물론, 교황과 추기경 및 왕과 귀족들까지 기도를 부탁하며 자문을 구하러 왔다.
아시시에 이슬람 대군이 쳐들어왔을 당시 클라라는 자매들의 부축 없이는 자신의 몸조차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병들어 있었지만, 수도 가족과 아시시 시민을 구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기도했다. 기도를 마친 후 성광을 모시고 적군 앞으로 나서자, 성광에서 강한 빛이 나와 적군들은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한다.
1252년 성탄 밤 중병으로 꼼짝할 수 없었던 클라라는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싶은 큰 열망으로, 병실을 떠나지 않고도 2㎞나 떨어진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미사에 참례했다. 이 기적은 1958년 교황 비오 12세가 그를 텔레비전의 주보로 선포하는 계기가 됐다.
1253년 8월 11일 세상에서의 마지막 찬가를 부르며 찬란한 빛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간 클라라는 2년 후인 1255년 곧바로 시성됐다.
성 클라라 수도회는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의 영성대로 교회 안에서 복음을 그대로 본받아 따르는 삶을 살고 있다. 수도회에는 많은 성녀들이 탄생했는데, 창립자 성녀 클라라를 비롯해 아시시의 아네스(1253), 프라하의 아네스(1282), 성녀 구네군다(1292), 콜레트(1447), 볼로냐의 카타리나(1463), 메시나의 에우스토키아(1458), 실비아의 베아트리체(1490), 볼로냐의 요안나(1501), 베로니카 줄리아니(1727)가 있으며 22명의 복녀와 32명의 가경자가 있다.
성 클라라 수도회는 김남수 주교의 초청으로 1994년 교구에 처음 진출했다. 봉쇄수도원이라는 하느님과 신비한 만남의 장소 안에서, 동정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과 항상 일치하는 기도 생활을 영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기도 생활에서 얻은 힘을 다시 교회의 전 지체로 보내는 교회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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