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신 이야기입니다. 많은 기적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오늘 복음 역시 기적에 대해 간단하게 전해줍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병자를 데리고 와서 낫게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꽤 자주 예수님께서는 병자의 믿음을 확인하기도 하시지만 오늘은 아무런 말 없이 병자를 따로 데리고 가서 치유해 주십니다. 기적 이야기에서 복음서들이 전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기적 그 자체는 아닙니다. 거의 모든 기적 이야기들에서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비교적 자세한 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 뒤에 “에파타”라고 말씀하시자 그의 병이 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아마도 군중들의 반응일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어떤 기적이 일어났는지, 또 어떻게 병자가 낫게 되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기적 이후의 사람들의 반응이나, 그들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기적 이야기들이 전해주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지금도 가끔 기적들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는 성모님과 관련된 기적들이 주를 이룹니다. 어떤 이들은 열광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것을 걱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사건이나 기적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에서 보이는 변화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기적은 그저 특이한 사건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들은 이사야서는 이것을 좀 더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눈먼 이들의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의 귀가 열리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표징입니다. 기적 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믿음 안에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느님을 깨닫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갑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야고보서의 권고는 어쩌면 시대와 관련이 없는, 초기 공동체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은 찔끔하는 내용입니다. 믿는 이들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표현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 말씀 앞에서 떳떳하기 힘든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무나 구체적인 예를 통한 것이라 더욱더 그렇습니다.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 인간적으로 누구를 더 친절하게 대할지 굳이 묻지 않아도 답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믿음은 때로 우리에게 쉽지 않은 것을 선택하라고 요구합니다. 믿음은 가끔 우리에게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말합니다. 또 믿음은 가끔 옳은 것을 위해 나의 것을 포기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래서 가끔 믿음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냥 좋은 것이 좋고, 편한 것이 좋고, 보기 좋은 것이 좋지만, 믿음은 가끔 그것을 예수님의 삶에, 그분의 가르침을 통해 보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우리의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믿는 이들에게 세상은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꽤 자주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말로 어느 정도 그것을 합당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우리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완전하긴 어렵지만, 그것을 포기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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