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왜 걱정합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어떤 근심 걱정이든 기도로 엮어 하느님께 맡겨드리라는 당부, 박신언 몬시뇰(전 서울대교구 가톨릭학교법인 담당 교구장 대리)이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며 사제로서 남긴 한마디였다.
박 몬시뇰은 지난달 21일, 퇴임과 관련한 작은 행사나 미사조차 없이 조용히 자리에서 뒤돌아 나왔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처신”이라는 평소 지론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박 몬시뇰은 서울대교구와 한국교회 사목 전반에서 굵직굵직한 소임을 누구보다 묵묵히 수행해왔다.
“내 마음에 드는 십자가를 골라서 지는 건 십자가의 삶이 아니지요.”
사목 역량도 탁월해 박 몬시뇰 뒤에는 ‘해결사’, ‘소방수’, ‘구원투수’ 라는 별명이 늘 따라다니곤 했다. 사목 현장에 있는 동안은 피정을 가는 것이 바로 휴가라고 할 정도로 매순간 최선을 다해 하느님 사업을 꾸려온 사목자이기도 했다.
1972년 사제품을 받은 이후 박 몬시뇰은 군종과 명동본당 보좌를 거쳐 필리핀 동부아시아사목연구원에서 수학했다. 1979년 압구정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해서는 교구 도움 없이 단기간에 부지매입과 성당 건립을 이뤄냈다.
사목자로서의 역량이 더욱 특별하게 발휘된 때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1984년) 행사위원회 사무국장 겸 기획분과위원장과 서울 세계성체대회(1989년) 행사분과위원장을 맡았을 때였다. 당시 박 몬시뇰은 각 행사가 한국과 세계교회 역사의 한 획을 이루고, 한국교회 위상을 높이는 장이 되도록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교구 관리국장과 가톨릭회관 관장, 사무처장, 평화방송·신문 사장 등을 거치면서 교구와 기관단체들이 안정적인 기틀을 잡는 데에도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특히 박 몬시뇰은 사제로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데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한 예로 2004년부터 명동주교좌본당 주임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영세자 수를 두 배 이상 늘렸다. 가톨릭학교법인 담당 교구장 대리를 맡은 이후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1724명이 한 번에 세례를 받도록 이끌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들은 사제로서 투철한 소명의식과 기도로 하루하루를 채워온 덕분이다.
“후배사제들에게도 말하곤 하지요. 사제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일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대접받고…. 그러면 하느님께 무엇을 더 받을 수 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기도 통장’도 만들어 매일 100단의 묵주기도를 쌓아왔다. 수십 년째 단 하루도 빼놓지 않는 일과다.
박 몬시뇰은 앞으로도 “기도와 보속에 힘쓰며 생활할 것”이라면서 “묵주알을 굴릴 힘조차 없을 노년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돈이 아니라 기도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옥이란 바로 하느님을 떠나 있는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일상 중에 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연습을 꾸준히 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때가 되었을 때 하느님께 나를 온전히 맡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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