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견진 대부님은 현재 음대 피아노 교수로 재직 중이시다. 내가 소년시절부터 그분은 대학생 신분으로 성인성가대를 지휘하셨다. 바쁜 생활 가운데 봉사하면서도 동아 콩쿠르에서 1등을 수상하신 바 있다. 매우 촉망 받는 분이셨다.
사제가 되기 전에 한 말씀 부탁을 하셨다.
“신부가 되면 꼭 인재를 양성해 달라.”
이 말씀이 더더욱 와 닿은 것은 첫 보좌신부 때였다. 신자가 9000명이 넘는 성당에 청년 성가대원이 대여섯 명 정도였다. 무엇이 잘못 돌아가는 듯 싶었다. 교적을 보고서 20세에서 30세 미만까지 신자가 1200명이나 있음을 알게 됐다.
우선 지휘자를 찾아야 하는데 사람이 없었다. 마침 인근 성당에서 봉사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 분을 알게 되었다. 우리 성당 관할이라 마음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완강히 사양했다. 나는 앞으로의 계획만 잔뜩 늘어놓았는데 내 정성이 부족한 듯 싶었다.
그때 오기가 나서 이렇게 맞서게 됐다.
“좋습니다. 그러면 내가 지휘를 하지요. 그런데 저는 음악을 잘 모릅니다. 나중에 각자가 죽고 나서 하느님 앞에 설 때 ‘너는 왜 그렇게 가르쳤냐?’고 나에게 물으실 것이고, 지금 형제님께는 ‘너는 왜 도와주지 않았느냐?’고 물으실 터인데 각자가 알아서 대답합시다.”
그분은 나의 저돌적인 질문에 당황한 듯 했다. 자세를 바로하고 봉사하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그는 나에게 단원 30명을 만들어 달라고 제안했고 나는 그에게 믿음의 보증 수표를 한 장 끊어 줬다. 보증수표는 앞으로 내가 본당신부가 되면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나는 보름 만에 청년 30명이 아닌 80여 명을 성가대 석에 앉혀 놓았다. 나의 헌신적인 노력에 신자들이 응답한 것이다.
이렇게 만난 지휘자와의 인연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그 보증수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톨릭음악인 장학회를 만든 바 있었다. 지금은 방법을 바꿔 개별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제적인 테너 가수 한 명과 파이프 오르가니스트 한 명을 키웠고, 현재는 바이올린 학생 한 명을 후원하고 있다. 모두가 잘 성장해 교회에 이바지하고 있다. 보좌신부의 당돌한 보증수표는 현재 21년을 넘어 이어지고 있다.
가끔씩 주보에서 유급 오르가니스트, 지휘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보게 된다. 매우 가슴이 아프다. 2000년 대희년 때 교회는 미켈란젤로의 편지를 공개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직원 월급 밀린 것을 달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묘한 편지를 공개한 것이다. 교회는 예술가들을 먹여 살렸다는 뜻이다. 공짜 좋아하는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관심과 투자 없이는 미래와 희망이 없다. 특히 오늘날에 그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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