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을 가득 머금은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솔숲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이 연신 등 뒤를 간질인다. 눈앞엔 바다를, 뒤엔 숲을 두고 휘적휘적 걷노라면 온몸에서 또 마음 속에서부터 생기가 솟아오른다. 묵주알을 굴리는 손에도 힘이 들어간다. 어디를 가도 하느님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빚어낼 수 없는 ‘천혜의 비경’과 마주할 수 있는 이곳, 하늘 땅 바다의 품을 한데 모아 누릴 수 있는 이곳은 동해 바다에 우뚝 솟은 섬 울릉도다.
울릉도의 자연 속에서 누리는 ‘소울스테이’(Soulstay). 최근 신자는 물론 비신자와 타종교인들에게도 몸과 마음, 영혼의 쉼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인기다.
‘소울스테이’는 대구대교구 4대리구청 천주교문화융성사업단(단장 원유술 신부)이 ‘영혼의 위로, 마음의 격려’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한 영성 체험 프로그램이다. 수도원, 성지 피정의 집, 사회복지시설, 본당 등과 연계해 자연 속에서의 쉼과 성찰, 봉사와 나눔을 통한 자기성숙 등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울릉도에서는 도동과 천부 성당을 중심으로 ‘나를 찾아 섬으로 떠나는 소울스테이’가 마련되고 있다. 2박3일간 섬 둘레길을 걷고, 울릉도 특산물로 차려진 자연밥상식을 먹고, 영성강의를 들으며, 나와 하느님을 찾아가는 알찬 시간이다.
몸과 마음이 아픈지도 모를 정도로 일상에 치여 지내는 이들. 왜 태어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돌아볼 틈도 없이 살아가는 이들. ‘번 아웃 증후군’(Burn-out, 극도의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무기력해지는 증상)도 흔한 말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쉼’이다. ‘쉼’은 육체적 정신적 휴식으로서 뿐 아니라 참 하느님과 참 자아를 찾아가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도동성당을 중심으로는 독도 탐방과 둘레길 걷기에, 천부성당을 중심으로는 나리분지와 석포 등의 트레킹 및 걷기 치료에 중점을 둔 소울스테이가 이어진다. 모든 여정은 울릉도의 자연을 보전하고 지역민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 이른바 친환경, 공정 여행이다.
울릉도 도동성당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무거운 짐 진 자 모두 나에게 오너라’는 성경구절을 만날 수 있다. 성당 안팎을 둘러싼 다양한 성미술품들은 누구든 성경말씀을 되새기도록 이끄는 매력을 지녔다. 오징어잡이배 모양을 본따 꾸민 성당에 앉아 있으면 온종일이라도 기도할 수 있는 기분이 들 정도다. 도동본당(주임 손성호 신부)이 지난 2010년 설정 50주년을 기념해 새 단장을 한 덕분이다. 성당 순례 중 성당 뒤편 언덕에서 독도를 바라보고 서 있는 ‘독도 지키는 성모님’과 함께 기도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언덕을 오르는 계단은 가파르지만, 밧줄 손잡이에 달린 묵주알을 잡고 기도하며 한걸음씩 내디디다 보면 어느 새 언덕 위에 올라서 있다.
천부성당 옆에서는 요즘 영성센터 건립이 한창이다.
천부본당(주임 나기정 신부)은 소울스테이에 참가하는 이들이 울릉도의 자연을 최대한 누릴 뿐 아니라 성당 안에 머물며 기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성당 바로 뒤편에 영성센터를 짓고 있다. 3인, 5인 등이 머무를 수 있는 방 외에 수도자들을 위한 2층 독방도 갖춘 시설이다. 10월 완공 예정인 이 영성센터 내부에서는 통유리창을 통해 코끼리바위, 송곳봉 등의 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또 영성센터에서는 모든 에너지를 태양광으로 충당하고, 오·폐수도 쌀뜨물발효액으로 처리할 계획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50여년간 해풍에 삭아버린 성당도 리모델링하게 되면, 이곳을 찾는 이들은 더욱 평안히 기도쉼터를 누릴 수 있을 듯하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울릉도를 한 바퀴 돌라치면, 하느님만큼 또한 하느님이 빚어 선물해주신 자연 만큼 큰 위로의 공간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소울스테이 참가 신청 및 문의 054-275-0610 soulsta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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