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사람들은 바오로 서간은 믿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또 야고보 서간은 실천을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내용을 조금 자세히 본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바오로 서간은 지속적으로 ‘행업’을 통해서 인간이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된다고 강조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무엇을 해서 그 결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선사받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표현으로만 본다면 이러한 바오로 서간과 반대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바오로와 야고보 서간이 말하는 것은 그리 달라 보이진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믿음을 통한 구원의 신적인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보상처럼 ‘내가 무엇을 했으니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에 반대합니다. 그렇기에 구원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야고보서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믿음은 이미 실천을 포함합니다. 믿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더 이상 야고보서에서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믿는 이들은 또한 그 믿음을 실제로 살아가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야고보서는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라고 전합니다. 실천과 믿음은 구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것은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삶이 구분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한 믿음일 것입니다. 믿는 것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가장 바른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믿음과 함께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에 제자들은 그들이 들은 내용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에 제자들은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단지 베드로만이 나서서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답합니다. 흠 잡을데 없는 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에 베드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베드로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그분을 따르겠다고 말하지만, 우리 역시 자주 베드로처럼 ‘사람의 일’만을, ‘나’의 것만을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이 걸으신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앞서 가거나 그분의 길을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제자로서의 자세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너무나도 익숙한 말씀이지만, 이것을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내게 있지만 내가 외면하고 싶은 어떤 것입니다. 이것만 없다면 편하겠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내게 주어진 십자가입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내게 있는 이런 어려움을 없애주십사 청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그것을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제자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놓여진 어려움을 없애 주시는 것이기 보다,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자가 없는 편안한 길을 구하기 보다, 십자가를 지고 갈 힘을 주시도록 청해봅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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