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환채는 창세기와 아가서에 한 차례씩 언급된 식물이다. 우리나라에는 자라지 않으므로 ‘사랑의 사과’라는 애칭이나, ‘합환채’라는 이름이 모두 낯설다. 하지만 생김새는 얼갈이배추가 길쭉하게 퍼진 것처럼 보여, 정감을 준다. 합환채와 함께 떠오르는 인물은 불임으로 고생한 라헬이다. 라헬은 오랫동안 아이가 없어, 처음에는 몸종 빌하의 몸을 빌려 단과 납탈리를 아들로 얻었다(창세 30,1-8). 고대 유다 문헌에 따르면 라헬이 불임을 호소하자 야곱이 사라의 예를 들며, 몸종 하가르를 데려와 아이를 본 뒤 이사악을 낳았다고 힌트를 주었다 한다. 그러자 라헬이 제 몸종을 야곱에게 데려왔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창세기 라바 71,1). 역사적 근거는 없지만, 흥미로운 스토리다. 그런데 어느 날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구해 오자, 라헬이 그걸 얻으려고 레아와 협상을 한다(창세 30,14-16). 당시 합환채가 수태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곧, 합환채는 라헬에게,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그런 실낱같은 희망을 주었다.
합환채는 여러 해 피고 지는 다년생 식물이다. 민들레처럼 땅에 붙어서 자란다. 라헬 이야기의 배경은 하란(현재 터키)이지만, 합환채는 지중해 지역 전체에 많이 자란다. 필자가 합환채를 발견한 곳은 지중해에 가까운 카르멜 산이었다. 히브리어로는 ‘두다임’이라 하는데, ‘도드’는 ‘연인’을 뜻한다. 두다임은 도드의 복수형인 ‘도딤’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합환채가 연인들의 관계를 암시하는 ‘사랑의 식물’임을 알 수 있다. 꽃은 푸른 색 또는 흰 색으로 핀다. 열매는 3~4월경 토마토나 사과 모양으로 조그맣게 익으며, 일명 ‘사랑의 사과’라고 불렸다. 특유의 강한 향을 풍겨, 남녀 간 사랑을 북돋워 주었기 때문이다. 르우벤이 합환채를 발견한 것도 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합환채는 연인들의 사랑을 노래한 아가서에 나온다. 여인이 애인에게 바치는 ‘사랑’(7,13)이 바로 히브리어로 ‘도드’다. 이어지는 14절은 애인을 위해 준비한 ‘두다임’, 곧 ‘합환채’에서 풍기는 향을 언급한다. 그리스 신화에 사랑의 여신으로 나오는 아프로디테도 합환채의 여신으로 통했다. 합환채는 독성분을 약간 함유해, 마취 효과가 있다. 적당히 섭취하면 통증을 줄이고,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그래서 불임 부부들은 합환채를 최음제처럼 썼다고 한다. 하지만, 과용하면 어지럽고 구토를 유발한다. 배변 작용을 또한 일으키므로, 설사약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합환채는 다년생이라 뿌리가 깊이 박힌다. 뿌리 모양은 인삼처럼 사람을 닮았다. 남자의 양기를 살리고 임신에 좋다고 여겨졌으므로, 풍산제에 사용되기도 했다. 고대 전설은 합환채가 가진 주술적 힘도 언급한다. 일례로, 합환채 뿌리가 뽑히면 소리를 질러서 듣는 사람을 죽게 한다고 전한다. 그래서 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합환채로 추정되는 식물의 뿌리 파내는 방법을 이렇게 소개했다. “식물 주위에 밭고랑을 파서 아래 부분 흙을 제거한 다음 개를 뿌리 옆에 묶으라. 그 뒤 반드시 몸을 피해야 한다. 개가 주인을 따라가려 할 때 뿌리가 뽑히면, 주인이 아니라 개가 죽는다.”
그렇다면, 야곱과의 하룻밤을 양보하고 합환채를 손에 넣은 라헬은 어떻게 됐을까? 오히려 아들이 넷이나 있는 레아가 이사카르를 낳았다. 그 뒤에도 레아는 즈불룬과 디나를 출산한다(창세 30,16-21). 반면 라헬은 합환채를 먹고도 삼 년 이상 불임이다가, 하느님이 라헬을 기억하신 뒤에 비로소 요셉을 얻었다(창세 30,22-24). 그제야 아이 없는 자신의 수치를 주님께서 ‘없애 주셨다’며 기뻐하고, 아들 하나를 ‘더 점지해 주시기’를 기원하며 이름을 ‘요셉’이라 했다. 요셉의 어근은 ‘아사프’ 또는 ‘야사프’다. 전자는 ‘없애다’, ‘가져가다’를 뜻하고 후자는 ‘더하다’이므로, 이중 의미를 갖는다. 곧, 라헬의 수치를 ‘없애고’, 아들 하나를 ‘더해 주실’ 것을 청한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소원대로 라헬은 가나안에 들어온 뒤 마지막으로 벤야민을 낳는다(창세 35,16-18).
라헬이 합환채를 먹고도 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듯이, 성경은 이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이 아이를 주신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던 것 같다. 합환채는 고대 연인들에게 사랑을 북돋워 주는 식물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의 아픔이 함께 숨어 있었던 것이다.
김명숙(소피아)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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