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전체가 ‘교회의 순례 여정으로서의 WYD’를 이해하고, 청소년·청년 사목의 비전에 따라 모든 교구가 상호 협력하여 WYD를 준비할 태세를 갖추게 되면 곧 본격적인 WYD 대회 행사 준비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WYD 대회 행사를 위해서는 각 교구별로 이루어지는 ‘교구 대회’(DID: Days in the Dioceses) 준비와 WYD 주관 교구에서 개최되는 ‘본대회’ 행사 준비를 병행해야 한다. 그런데 참고할만한 공식적인 기록이나 자료가 풍부한 본대회와 달리, 교구 대회의 경우 본대회에 비해 소규모로 치뤄지는 행사인데다 개최 국가나 교구별로 다양하게 이루어지다보니 정석(定石)이라고 할 만한 공식 형태를 잡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교구 대회의 몇 가지 핵심, 즉 WYD 참가자들이 교구 내 신자들과 함께 어우러져 만나는 것, 교구의 전례나 기도 모임, 문화 행사, 봉사활동 등의 참여를 통해 지역 교회의 신앙과 문화를 체험하는 것, 여러 대륙의 젊은이들이 소그룹으로 만나 서로의 다름을 넘어서면서 신앙을 통한 우정을 맺게 된다는 것 등은 형태와 상관없이 공통적인 내용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교구 대회의 구체적인 준비를 위해서는, 그 취지와 기본 내용을 이해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있었던 교구 대회의 다양한 형태를 수집하여 참고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본다.
필자가 직접 체험했던 교구 대회의 여러 형태 중에서 인상 깊게 남아있는 몇 가지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첫 번째로 1995년 필리핀 WYD 때가 떠오른다. 당시 한국 참가자들은 마닐라 근교의 성 아우구스티노 대학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라틴아메리카와 유럽, 아프리카에서 온 WYD 참가자들과 함께 지내며 매일 저녁 떼제노래와 함께하는 기도모임에 참석하였다.
저녁 기도모임 자체는 무척 아름다웠지만, 아무래도 계속 영어로 진행되다보니 낮 동안 여러 다른 행사에 참여하느라 지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기도가 잘 와 닿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던 차에 떼제노래 중 일부를 한국어로 부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제안이 나왔고, 교구 대회 운영의 유연성 덕분에 그 제안이 바로 수용될 수 있었다.
저녁 기도 중에 갑자기 한국어로 ‘찬미하여라’가 들리자, 수동적으로 기도에 참여하고 있던 한국 젊은이들은 반가워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마지막 날 기도모임까지 열정적으로 참여하며, 십자가 친구(親口)와 화해의 성사를 통해 깊이 있게 하느님을 만난 한국 젊은이들은 이와 같은 자신들의 체험을 한국에서도 계속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이들 필리핀 WYD 참가자들이 주축이 되어 당시의 기도모임 체험을 모태로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날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에서 19년째 이어지고 있는 ‘떼제노래와 함께 하는 청소년·청년 기도모임’이다.
이처럼 필리핀 WYD에서의 소그룹 기도 체험은 젊은이들이 가진 영성에 대한 갈망을 떼제노래와 함께하는 기도로써 채울 수 있도록 이끌어 준 기회였으며, 그들의 영성에 대한 갈망과 열정은 또한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한국의 다른 젊은이들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WYD가 하느님을 향한 신앙의 여정, 순례의 길임을 되새겨볼 때, 이와 같이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기도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 본다. WYD 본대회가 풍요롭고 화려한 대규모 행사와 훌륭하게 준비된 전례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가톨릭교회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해 준다면, 교구 대회는 소규모이기에 가능한 단순 소박한 기도와 다양한 사람들 간의 나눔이 진정한 공동체성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조재연 신부는 서울 면목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하고 있으며, 햇살청소년사목센터 소장,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청소년사목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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