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는 가족을 보고 싶지 않아요. 생각조차 하기 싫어요.”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아눌포(오스왈도·50·대구대교구 고령본당)씨. 가족 이야기를 꺼내자, 눈물부터 글썽였다.
아눌포씨는 2010년 8월 한국에 왔다. 고향을 떠나 멀리 이곳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 오로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가 더 이상 가족이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불법체류자 신분이기에 공사현장이나 딸기밭 등에서 일용직 노동밖에 할 수 없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다. 천식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와 대학에 다니는 하나뿐인 아들은 그의 전부였기에,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수입 전부를 가족에게 보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혼자 일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가족을 떠올리며 어려움을 이겨냈다. 하지만 갑작스레 닥친 병마는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병명은 심근경색. 6개월 전부터 가슴 통증이 있었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일념으로 정작 자기 몸은 돌보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결국 지난 7월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 증세로 입원한 아눌포씨는 증상이 심해 개흉 수술을 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고향의 가족에게 사실을 알렸지만 이것으로 가족과 이별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가족들이 저를 버리고 달아났어요. 저는 오직 가족들을 위해 희생했는데 제가 아프다고, 수술비가 필요하다고 하니 연락을 끊고 사라져버렸어요.”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남은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와 가족에 대한 배신감이 준 쓰라린 상처뿐이었다. 아프고 힘들 때면 가족이 생각나기 마련이지만, 이제 그에게 그런 가족은 더 이상 없다. 아눌포씨는 “마음의 상처가 가장 크고 힘들다”면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떠올라 괴롭다”고 말했다. 그러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가족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도, 수술 부위도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그는 현실의 냉혹함에 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당장 병원비가 필요하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데다, 불법체류자 처지에서 수천만 원의 비용을 마련할 방법은 불가능해 보인다. 필리핀에 형제들이 있긴 하지만 빈민과 다름없는 형편이어서 도움이 되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 외국인 의료비지원으로 10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2000여만 원의 병원비는 감당할 길이 없다. 퇴원 후에도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하고, 정기적인 검사도 받아야 하는데 수중엔 단 한 푼도 남아있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아눌포씨는 “그저 하루빨리 퇴원해 다시 일하고 싶다”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머릿속을 짓누르는 가족 생각을 잠시라도 잊으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아눌포씨의 상처가 치유되고 다시 일어서도록 돕는 희망의 씨앗이 뿌려지길 기대해 본다.
※성금계좌※
우리은행 702-04-107881
농협 703-01-360446
국민은행 801301-01-584914
예금주 (주)가톨릭신문사
모금기간 : 9월 9일(수)~9월 29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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