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끓는 모정에 이끌려 배교를 선택한 복자 이성례 마리아와 굳건한 신앙을 고백하는 그의 둘째 아들이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펼쳐낸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리듬으로 시작했지만 노래가 절정에 다다를수록 하나의 음색으로 조화를 만들어 간다. 결국 회심을 결심하고 순교를 향해 나아가는 이성례 마리아의 결의에 찬 음색이 듣는 이의 마음 속 깊이 감동을 전한다.
9월 5일, 충남 천안시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제17차 전국 울뜨레야에서 ‘복자 이성례 마리아의 순교 사화’가 뮤지컬로 만들어져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에서 소개된 12곡에는 엄마로서의 애절함과 신앙인으로서의 믿음이 절절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노래들은 모두 정원찬(그레고리오·57·대전교구 전민동본당)씨가 작사 작곡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정씨가 전문 음악인이 아닌 이학박사라는 점이다. 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친구처럼 여겨왔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곡을 만들었고, 악기를 연주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90년대 초부터는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좋아하던 작곡을 멈추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2002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대세를 받은 것을 계기로 정씨도 세례를 받았고, 놀랍게도 10여 년 동안 사라졌던 악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떠오른 악상은 생활성가를 만들기에 좋은 선율이었다.
“신자가 되고 일주일 만에 대전 전민동성당의 종탑을 보면서 ‘종을 울려라’라는 곡을 만들었어요. 소름끼치도록 짜릿했는데, 이후에는 계속 악상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끝에 탄생한 작품이 뮤지컬 ‘복자 이성례 마리아의 순교 사화’다. 이 뮤지컬은 사실 2007년 전민동성당에서 초연된 바 있다. 평소 순교자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정씨는 한 신부의 강론을 통해 이성례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복자의 극적인 삶은 그의 심장을 두드렸다.
“아내와 성지순례를 다니고 성인전을 읽으면서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부했어요. 그 중에서도 배교 후에 다시 회심을 한 이성례 마리아 복자는 너무 인간적으로 다가와 강론을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죠.”
정씨는 바로 곡 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청중이자 비평가인 아내 박윤미(헬레나·51)씨와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6곡으로 구성된 뮤지컬을 완성했다. 부부는 “작업하는 9개월 동안 은총의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공연을 끝낸 후 정씨는 아쉬움이 남았다. 복자의 삶을 담아내기에는 극이 너무 짧았던 것이다. 보완 작업을 고민하던 그는 전국 울뜨레야에서 공연 제의를 받으면서 기회를 갖게 됐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9곡을 추가로 제작했고, 그 중 3곡을 제외하고 이번 무대에서 선보였다.
공연은 전국에서 모인 8500여 명 관중들 앞에서 성황리에 마쳤다. 오랫동안 이 작품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봉헌한 정씨와 아내 박씨는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새로운 꿈을 또 하나 갖게 됐다.
“지난해 시복식에도 참석했는데, 복자 이성례 마리아가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많은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앞으로 복자와 그 가족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계속 음악으로, 극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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