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오면서 눈에 띄는 기념품을 수집한 지 십 년이 넘었다. 그렇게 모은 기념품은 장식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넘쳐났다.
그중에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는 수집품이 ‘탄피 십자가’다. 볼품없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나는 무한한 꿈을 꾸고 있다.
2006년 봄 벨기에 반뇌 성모성지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무언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우연히 ‘Missio’라는 가게에 들어가 손때 묻은 선교사들의 기증품을 들여다 보았다. 그곳은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 전액을 아프리카 빈민촌을 위해 지원하는 아름다운 가게였다.
우연히 탄피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탄피 십자가의 사연을 듣는 순간 가슴에 전율이 솟구쳤다.
독일의 한 여성 정치인이 내전 중인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그곳 소년들은 전쟁 중에 소년병으로 끌려갔고, 소녀들은 성 노예로 팔려가고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탄피가 유일한 소꿉놀이 도구였던 그들에게 “너희들 소원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모두가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 돈은 부모의 노동력에서 나와야 했지만 그들에게는 불가능한 현실처럼 생각했다.
독일의 정치인은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이들을 구할 방법은 없을까요?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그때 재봉틀 한 대면 그들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당시 6만 원이면 그들의 손에 탄피 대신 노트와 연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한 정치인의 기도와 삶에서 묻어난 지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너희들이 원하는 학교를 보내줄게. 재봉틀을 사줄게.” “정말인가요?” “그래. 그 대신 탄피를 모아서 십자가로 만들어라. 탄피 십자가 한 개당 2유로를 주마.”
그 동네 소년들은 정치인과 굳게 약속을 했다. 그리고 어디서 구했는지 어설픈 톱과 망치를 찾아 절개하고, 두들기고, 자르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십자가였다. 40개를 만들면 재봉틀 한 대가 생긴다.
나는 그 소년들이 작업하는 필름을 들여다봤다. 너무나 감격했다. 그 자리에 전시된 탄피 십자가 30여 개를 모두 사들였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기도하라고 당부했다. 누구의 심장을 향해 쏜 탄알이었을까? 생명을 앗아간 탄알을 생명을 살리는 탄피 십자가로 만든 독일인 정치인의 지혜에 감복했다.
이것이 부활이다. 죽음에서 생명을 살리는 기적. 부활이란 죽음을 넘어선 하나의 희망을 상징한다. 우리 한국사회에서 이런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고 싶다.
해외성지에 가면 꼭 들러 탄피 십자가를 다 사가지고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탄피 십자가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전쟁은 멈추지 않았는데….
그 이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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