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역이나 도심 지하도 귀퉁이에서 온종일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모처럼 펴고 나섰다. 오늘은 합창이다. 서울 영등포역 인근 요셉의원 4층에 자리 잡은 도서관에 노숙인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노래가 시작되자, 앞에 있는 사람과 눈도 마주치고 옆에 앉은 이에게 박자도 알려주며 흥을 표현한다. 마이크가 주어지면 망설임 없이 독창에도 나선다. 서로의 노랫소리에 격려의 박수도 친다.
5년 전만 해도 이들은 푹 숙인 고개를 좀처럼 들려 하지 않았다. 노래는커녕 대화도 하기 싫어했다. ‘한 번 해볼까요?’라는 권유에 웃으면서 일어서고, 서로 해보라고 권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변화의 중심에는 요셉의원 음악치료교실이 자리한다.
사회복지법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요셉의원(원장 이문주 신부)이 목요일마다 노숙인들을 위해 마련하는 음악치료교실은 매주 새로운 활기로 채워지고 있다.
노숙인들의 온전한 자활을 위해서는 신체적 치료 뿐 아니라 정신적·정서적 돌봄도 절실하다. 요셉의원에서도 오래전부터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문화교실을 열고 싶었지만, 운영이 녹록지 않았다. 요셉의원의 숙원이었던 음악치료교실은 김군자 교수(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음악치료학)의 자발적인 봉사 덕분에 2010년 문을 열게 됐다.
이 음악치료교실에는 매주 20여 명의 노숙인들이 지속적으로 참가한다. 참가자들은 노랫말 한 줄에 숨이 넘어갈 듯 웃기도, 눈이 퉁퉁 붓도록 울기도 한다. 더불어 풀어내는 가슴 속 사연들도 제각각이다. 이렇게 음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타인과도 소통하면서, 노숙인들은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체험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속감’을 갖고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노숙인들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음악치료교실을 지도하는 김군자 교수는 “노숙인들이 음악을 통해 공감을 나누고 인간관계도 새로 형성할 뿐 아니라, 나도 ‘합창단’에 소속돼 있고 정기적으로 갈 곳이 있다는데 큰 안정감과 위로를 얻는다”고 전했다.
요셉의원은 지난해부터는 매월 1회 영화포럼을, 올해 4월부터는 매주 1회 인문학 강의도 열고 있다.
영화포럼은 일종의 영상피정식으로 진행돼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인문학 강의도 개개인이 자존감을 갖추고 ‘마음 길들이기’에 나설 수 있도록 돕는 시간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고독에서 벗어나는 법’, ‘친구 사귀는 법’, ‘노년을 즐기는 7가지 지혜’ 등 노숙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강의를 제공하는 시간이다.
요셉의원 원장 이문주 신부는 “노숙인들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우려면 내외적으로 전인적인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앞으로도 노숙인들이 다양한 사회·문화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카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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