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가능한가. 참 평화는 어떤 모습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장이 열렸다.
제주교구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예수회 한국관구와 함께 9월 7~9일 사흘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 마련한 제2회 강정 평화 컨퍼런스는 평화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한 자리였다.
제주 평화의 섬 선언 10주년을 맞아 ‘비무장 평화의 섬, 그 의미를 조명, 성찰하고 계획한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일본 오키나와 나하교구 관계자와 주민들, 일본 예수회 회원 등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함께했다.
첫날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평화’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무력을 통해 폭력과 죽음을 확산시키는 모든 이들에게 호소한다. 여러분이 지금 무찔러야 할 적으로 여기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의 형제나 자매임을 깨닫고 무기를 든 손을 거둬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창훈 교수(제주대학교 행정학과)는 ‘제주 평화의 섬 선언의 의미와 전망’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강정 평화센터 출범을 계기로 강정마을이 동북아 평화의 상징이 될 수 있게 강정 국제환경대학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둘째 날 오시카와 토시오 주교(일본 오키나와 나하교구장)는 ‘오키나와로부터의 메시지 : 오키나와의 역사로부터 비무장 평화 성찰’을 주제로 발표했다.
8일 오후부터는 군사 배치로 자연과 주민의 삶이 훼손되고 있는 섬들을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다각도에서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행사 기간 참가자들은 평화센터를 출발해 알뜨르 비행장과 당산봉 등을 거쳐 김대건신부 표착기념관까지 올레길을 걷는 ‘제주 평화순례’ 기회를 갖기도 했다.
■ 강우일 주교 주제 발표 요지
‘형제애’가 바로 평화로 가는 길
우리 현실 속에 평화란 가능할까?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2014년 자료에 의하면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 수준을 100이라고 할 때, 대기업 비정규직은 64이고, 중소기업 정규직은 52,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5다. 양극화 현상은 이렇게 구조화되어 있다.
오늘의 세계는 귀한 생명이 전쟁터도 아닌 곳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슬람국가(IS)에 젊은이들이 몰려가고 있다. 유럽 출신 젊은이들도 지원한다. 제3세계로부터 이주해 간 이주민의 2세, 3세들이다. 평생 발버둥 쳐야 주류가 될 수 없고, 빈곤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과 분노에서 극단적인 무력투쟁에 가담한다. 근본적으로 제1세계와 제3세계 국가 간의 과도한 빈부 격차와 계층 간의 경제적 불균형에서 축적된 분노와 증오가 원인이다. 이런 격차와 불균형이 존재하는 한 평화가 오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평화의 그리스도교적 좌표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4년 세계 평화의 날을 기해 전 세계를 향해 형제애가 바로 평화의 바탕이며 평화로 가는 길임을 선포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민족이 다르고 문화·국적·계층이 달라도,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가족의 일원이고 형제라는 가르침으로 되돌아가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질적인 사람들이 서로를 형제로 존중하며 공존하기를 원하신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다. 이 뜻으로 돌아가 서로 한 아버지의 자녀임을 인정하고 그 권익을 존중하려는 근원적인 회심을 하지 않는 한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바오로 6세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을 인용, 부유한 나라들이 아직 덜 발전된 나라들을 도와야 한다는 연대의 의무, 강한 사람들과 약한 이들 사이의 관계를 더욱 공정하게 재정립해야 한다는 사회 정의의 의무, 모든 사람이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고, 한 쪽의 발전이 다른 쪽의 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보편적 사랑의 의무 등을 호소했다.
오늘날 경제위기는 하느님과 이웃에게서 서서히 멀어지고 물질적 부를 탐욕스럽게 추구한 데서 비롯됐다.
■ 고창훈 교수 주제 발표 요지
국제협약체결로 평화 보장 받아야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선언한 지 10주년을 맞았지만, 해군기지 건설로 평화의 정체성은 퇴색됐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 되기 위해서는 4·3사건의 진정한 화해와 강정 생명평화운동을 연계해 또 다른 평화의 섬을 만드는 역사적 작업을 해야 한다. 제주가 군사기지가 아닌 진정한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기 위한 한 방법으로 국제협약체결을 통한 평화 보장을 눈여겨 볼만하다. 제주도가 나름의 평화 정체성을 키우는 전략을 생각하면서 생존해나가려고 한다면 국제기구, 국제평화교육, 국제평화문화를 제도화시키려는 ‘새로운 평화이론’에 의거해 갈등이나 전쟁 예방력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핀란드의 자치령 올란드 섬은 1921년 국제연맹을 통해 자치권을 확인받아 정치적 중립과 비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스피츠베르겐 섬 역시 1920년 파리에서 열린 스피츠베르겐 조약으로 북극 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평화의 섬으로 탄생했다. 코스타리카는 제주도처럼 심각한 이념적 내전을 겪었지만 이후 군대를 없애고 영구 중립국을 선언했다.
이런 ‘신평화이론’으로 남북 간 긴장 완화, 평화교류를 시도할 수 있다. 강정마을 역시 제주도의 비무장 평화를 위한 한반도 관련국 6자 회담을 제안할 수 있다.
■ 마고사키 우케루(孫崎享)씨 발표 요지
한·중·일, 한반도 긴장 해소할 해법 찾아야
제주 해군기지는 남한의 안전보장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 목적은 미국의 중국 견제이고, 미 해군의 세력 확보를 위한 것이다.
미국 전체 안전보장을 생각해 볼 때도 강정 해군기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일임에도 강행하는 것은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 것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군기지를 반대하려면 한국 정부가 압력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며, 그 힘은 국민의 저항에서 비롯된다.
핵무기를 사용하면 모두가 파괴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서로 핵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호 확증 파괴 전략’이 작용한다. 북한을 핵 위협해온 상황에서 북한이 핵 억지력을 갖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지 않으며 생존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외교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한국 일본 중국 북한 간 안전을 위한 유화외교를 반기지 않는다. 일본 입장에서도 북한과의 긴장고조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로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일본 중국 한국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협의를 진지하게 해나가는 동시에 북한 정권을 전복하려는 시도에 동참하지 않아야 한다.
■ 오시카와 토시오(押川壽夫) 주교 : 오키나와에서의 메시지
“오키나와에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피땀을 흘리는 이들이야말로 미래의 희망이다.
오키나와는 150년 전까지 독립된 ‘류큐왕국’이었다. 일본에서는 한창 싸우고, 쇄국을 하던 시대에 류큐는 바다 건너 나라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평화로운 날들을 구가했다. 무기로 나라를 지키는 것을 배우지 않고, ‘평화와 생명’의 존엄성을 중요시하며 전쟁을 추구하지 않았다.
오키나와 현에는 일본 전체의 미군 전용시설 면적의 약 75%가 집중돼 있다. 현 전체 면적의 10.4%(오키나와 본섬의 18.8%)를 미군기지가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오키나와 이외의 류큐 모든 섬에 군사적 점령을 계속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오키나와에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 도로나 건축공사 때 아직도 매년 2000발 이상의 불발탄이 발견되고, 거의 매주 그 주변 300m 이내의 주민이 대피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오키나와 현민의 80% 이상이 헤노코에 새로운 기지를 건설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오키나와교구 평화위원회는 매월 평화운동가나 지식인들을 초빙해 평화교육을 열며 교구 평화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 교구 차원에서 매년 ‘오키나와 영령의 날’에 평화순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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