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년 전 저희 부모님은 별거를 시작하셨습니다. 30년에 가까운 의처증으로 엄마를 괴롭히던 아버지는 퇴임 후 음주가 잦아지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별거 후 중간에 있는 저희에게 너무도 마음 아픈 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아버지, 부모님이 평생 모시던 저희 할머니의 이간질과 간섭, 자존감이 회복되지 않는 엄마. 그 틈에서 저희가 말 한마디라도 거슬리게 하면 어느새 저희가 그 싸움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피해의식과 화를 다독여가며 아버지도 지키고 엄마도 지키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라는 생각에 양쪽 다 챙기느라 버거운 생활들을 이어왔고 어느 정도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문제는 고모들인데요. 엄마가 할머니와 아버지를 못 챙기는 상황이 되니 고모들은 엄마를 나쁜 여자로 몰고 있습니다.
최근 할아버지 제사에 만난 고모들은 분위기상 오지 못하신 엄마 얘기를 꺼내어 저희들에게 화풀이를 하며 따지면서 모든 탓을 엄마에게로 돌렸습니다. 주일에 들러 할머니께 반찬을 해주는 것은 나중에 생색내기 위함이고 남편을 의심하게 한 것도, 화나게 하는 것도, 중간에 있는 저희가 아무것도 안하도록 잘못 키운 것도, 자기들의 엄마를 불쌍하게 하는 것도 엄마 탓이라며 막말을 쏟아내며 심지어 임신 8개월 중인 저에게 따귀를 때리며 자기들 입장만 쏟아냈습니다.
제가 슬픈 이유는 그들이 저와 같은 신앙을 믿고 같은 복음을 듣고 같이 묵상하는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성지순례며 공동체 생활을 열심히 하는 그들의 신앙생활이 모순되어 보이고 그들 아니라 열심인 다른 신자들 또한 신앙과 현실은 별개의 것인지 복잡한 생각이 이어져 괴롭습니다.
(답변)
이미 아시겠지만 겉으로 열심한 듯 보이는 신앙생활이 실제로 주변 사람에게 큰 사랑으로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자매님께서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고모들의 이중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자신과 형제들이 어머니가 아버지와 같이 안 산다는 점 때문에 고모, 아버지, 할머니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어른답게 행동하면 매우 좋겠지만, 그분들이 아이처럼 행동하건, 비윤리적으로 행동하건 자매님과 형제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어떤 이유를 대건 물리적인 폭력, 인격모독이 심한 욕설 등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오히려 병이 될 것입니다. 갈등이 없는 가족은 없지만, 그렇다고 모두 손찌검을 하거나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지는 않습니다.
한데 자매님의 경우는 할머니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아버지가 병석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고모들이 자주 와서 들여다보고 있는데, 굳이 지금 당장 제사 때마다 친정에 가서 친정 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만약 아버지가 자매님과 형제들의 생계를 다 책임지고 고모들이 제사를 지내러 와서 모든 일을 다 그분들이 하고 있다면, 그분들의 비난을 온전히 다 피해가기는 힘들 것입니다. 반대로 자매님과 형제들이 충분히 자립 능력이 있고, 아버지 역시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아버지나 고모들하고 지금 엉켜서 살아야 하는지도 의문이 듭니다. 어머니가 혼자 자립하실 정도이고 형제들 역시 따로 살림들이 있다면 아버지와 고모들 할머니가 나름대로 평화롭게 사시도록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정말 쇠약해지셔서 자녀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면 그때 더욱 열심히 도와드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오히려 그때를 위해 지금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정작 필요할 때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도리이겠습니다.
다만 할머니와 아버지 고모들이 어머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건 그분들의 자유이기 때문에 형제들이 나서서 어머니 입장을 설득하려 해도 아마 소용이 없고 돌아오는 것은 말씀하신 대로 폭력적인 언행일 것입니다. 해서, 이 기회에 자매님은 친정으로부터 확실하게 독립하고 다른 형제들에게도 빨리 아버지와 고모로부터 떨어져 살도록 조언해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어머니 입장과는 또 다른 아버지 입장도 있을 것이니, 아버지를 무조건 죄인 취급하기보다는 부부 갈등은 자녀들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드리고, 자매님은 자녀로서의 의무만 확실하게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는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로 진행됩니다.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나누고 싶은 분은 아래 주소로 글을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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