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종합】“부(富)는 우리를 가난하게 만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20일 저녁 쿠바의 수도 아바나 대성당에서 이전의 어떤 자리에서보다도 더 강하고 날카롭게 부유함을 피하고 가난을 택할 것을 요청했다. 전날 아바나에 도착한 교황은 주교와 사제, 남녀 수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하느님은 가난한 교회를 사랑하고 원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25분간에 걸친, 원고 없이 이뤄진 연설에서 “부유함은 우리가 가진 최고의 것을 빼앗아가고 우리를 오히려 가난하게 만든다”며 “어머니를 사랑하듯이 가난을 사랑하라”고 촉구했다.
교황이 19일부터 28일까지 열흘간의 아메리카 대륙 순방에 나섰다. 교황의 이번 순방은 교황 즉위 이후 가장 긴 여정으로 소요시간으로 따지면 지난 2013년 브라질 순방보다도 하루가 더 길다. 이번 순방길에서 교황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 동북부 올긴, 동남부의 산티아고 데 쿠바 등 3개 도시를, 미국에서는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뉴욕과 워싱턴, 그리고 가정대회가 열리는 필라델피아를 방문한다.
교황은 앞서 20일 오전에는, 수십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순방 여정 첫 옥외미사를 쿠바의 심장부인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봉헌했다. 수많은 정치집회가 열렸던 이 광장에서, 교황은 쿠바의 공산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의 얼굴을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 아래에서 순방 첫 미사를 봉헌했다. 하지만 고도의 정치적 역설을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교황은 오히려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복음적이고 사목적인 주제와 내용의 강론을 통해 만인을 위한 참된 봉사를 강조했다.
교황은 “자기 잇속만 차리는 봉사(self-serving)의 유혹에 조심해야 한다”며 “‘우리 사람들’이라는 미명 아래 ‘내 사람들’에게만 봉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교황은 이어 “우리는 이념에 봉사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하기 때문에, 봉사는 절대로 이념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황의 해외 순방은 근본적으로 사목적이지만 정치적 의미와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오랫동안 외교관계가 단절됐었고, 여전히 쿠바에 대한 미국의 55년간에 걸친 경제 봉쇄가 완전히 거둬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과 쿠바를 동시에 방문하는 이번 교황 순방은 정치적인 의미도 짙게 담고 있다.
이번 순방을 양국 사이의 정치적 화해의 계기로 파악하는 흔적은 여러 군데서 보인다. 교황은 아바나 공항에 도착해 가진 연설에서 지난해 12월 뚜렷해진 미국과 쿠바의 관계 회복 조치들은 “우리를 희망으로 채우는 사건”으로 평가했다. 새롭게 열리는 양국 관계는 “만남과 대화의 문화가 거두는 승리의 표징”이라고 교황은 말했다. 양국 정치 지도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과 쿠바의 이러한 화해 무드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한다.
교황을 마중 나온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미국과 쿠바의 대화를 적극 지원해준 교황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면서,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들과 불의한 조치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1960년 미국에 의해 시작된 경제 봉쇄 조치는 잔혹하고 비도덕적이며 불법적인 것이므로 중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타나모 미군 해군기지 역시 쿠바에 반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세간에서는 교황의 양국 방문을 기해 경제 봉쇄가 대폭 풀릴 것을 기대하기도 한다.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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