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서 스승의 가르침은 영원한 선물이 된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알아듣지 못하던 스승의 말씀들이 사제가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
세속의 흐름 속에서 판단력이 흐려질 때마다 가끔 따끔한 충고와 위로가 그리울 때가 있다. ‘사제란 어떤 존재인가?’ 묵상의 주제로 꺼내든 말씀들을 회상하며 몇 가지 추려본다.
첫째, 신학교의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목자가 아니다. 참된 목자를 도와주는 개새끼가 돼야 한다.” ‘개새끼’라는 충격적인 단어가 들어가서 놀랐다. 그 개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영적인 양들을 지키는 개가 돼야 한다는 뜻이었다.
양 모는 개들, 소 모는 개들을 봤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소똥 마을이란 곳을 지나가게 됐다. 정말 소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 무리떼가 이동할 때 소 모는 개들이 계속 짖어대며 한쪽으로 몰고 있었다. 본당에서 사목생활을 하면서 숱한 냉담자들을 어떻게 돌봤는지 자문하게 됐다. 저 개만도 못한 사제가 되지 말라는 뜻이 내 귀에 울리고 있었다.
둘째, 철학시간에 평신도 스승께서는 “사제는 종합예술이 돼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성음악, 성미술품, 연극, 무용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어째서 그 많은 주문을 하실까? 그분은 정곡을 찌르듯 말씀하셨다. 성음악을 모르면 전례를 흩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례에 맞지 않는 성가곡을 넣는다면 어찌될 것인지, 세속의 음악을 묵상시간에 넣는다든지…. 무지함에 빠지지 않도록 잘 판단해 보라는 것이다.
강론 중에 발음 하나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고 호소력 있게 공감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다. 연극배우가 객석의 숫자가 많건 적건 관계없이 혼을 바치듯 사제는 준비된 모습으로 진지하게 열정을 다해 강론을 해달라고 하셨다. 또 미사 중에 올렸다 내렸다 하는 모든 팔 동작도 무용과 같다고 하셨다. 움직이는 모든 선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우아한 모든 움직임은 신자들 눈에는 기도가 될 수 있다고 당부하셨다.
셋째, 일선 사목현장의 본당신부께서 한 말씀 던지셨다. “사제는 기생이 돼야 한다.” 기가 막힌 표현이었다.
무슨 기생이랴? 슬픈 일이 있으면 그 가정에 가서 같이 슬퍼해 주고 위로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집을 나와서 기쁨을 맞이한 가정이 있으면 얼른 달려가서 같이 웃어 주고 축하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제는 그 한복판에서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매사에 이렇게 산다면 나는 성인이 됐을 것이다.
쉽지 않은 스승의 말씀들이었다. 그러나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제의 존재 이유다. 교황 성하를 보면 성서 속 예수님이 걸어 나오신 것 같다고들 한다. 교황 성하만큼 따라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분을 본받을 만한 염치는 있어야 할 것 같다. 특히 오늘날 미사 시간에 신자들이 줄어가고 있다고 걱정하는 시대에 사제가 할 일은 참으로 태산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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