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부임한 신부님들은 성당 마당의 한쪽 구석에 모셔져 있는 본당 주보성인 성상에 대한 신심을 활성화하고자 성상을 환하게 비추는 등을 설치했습니다. 그러자 저녁이 되면 신자들이 와서 조용히 기도하고 묵상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빛이 담 너머에 있는 집으로 은근히 번져, 그곳에 사시는 어느 할머니 가족이 잠을 잘 수가 없다는 민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자 보좌 신부님은 낮에 등의 방향을 성상 아래로 낮추었는데, 저녁이 되자 기도하러 오신 신자 분들이 불빛의 방향을 다시 성상 얼굴 쪽으로 해 놓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 분들의 열성으로 결국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또다시 성당에 찾아와, 사제관 대문 앞에 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할머니가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그 날은 주임 신부님과 보좌 신부님이 함께 외출을 하려는데, 할머니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자 주임 신부님이 먼저,
“할머니, 오셨어요. 할머니, 제가 설명을 해 드릴게요. 저 불빛이 할머니 집으로 안 가도록 하려고 불빛 방향을 담 아래쪽으로 낮추어 놓으면 또 누군가 불빛 방향을 다시 높여 놓아 결국 원위치가 되어 버렸어요. 할머니를 또 이렇게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가 지역 주민들과 사소한 문제로 마찰을 일으키니 할 수 없네요. 저희가 이 등을 치울게요.”
그런데 할머니는 그 말을 듣자 심하게 손사래를 치면서,
“아이고,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내가 앞으로 성당 다니면 오겠지만 그 이전에는 다시는 안 찾아올게요. 그러니 저 등을 절대로 없애면 안 돼요. 절대로.”
‘엥!’ 갑자기 성당 마당이 말할 수 없는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할머니의 말을 들은 두 분 신부님은 어안이 벙벙해져 말하기를,
“아니, 할머니, 전에는 저 불빛 때문에 잠을 못 주무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괜찮아요?”
그러자 그 할머니는 등을 없애면 안 된다고, 계속 펄펄 뛰더니,
“저 불이 얼마나 영험한 불인데. 아이고, 저 불 절대로 끄지 말아요. 우리 손녀딸이 저 불 때문에 이번에 취직이 되었어요, 취직. 이 어려운 시기에 취직이 된 것은 저 불 때문이에요. 내가 가만히 보니, 저 불이 켜지면 사람들이 여기 있는 사람 동상에다 절도 하고, 빌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아마도 그 덕을 본 것 같아요.”
‘아니, 성상을 비추는 저 불이 영험하다고! 그리고 저 불빛을 보고 사람들이 절도 하고, 빌기도 한다고! 이런….’
그러자 주임 신부님은 또 말하기를,
“할머니는 그렇다 치고, 할머니의 아드님이랑 손녀딸도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할머니 가족들도 다 괜찮다고 해요?”
“암, 괜찮고말고. 내가 우리 아들이랑 손녀딸에게 말했어요. 저 불빛 때문에 사람들이 기도하고 그래서 그 덕을 보고 있다고. 여러 사람들이 동상 앞에서 기도하니, 자연히 그 공덕이 담 넘어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이라고. 그러니 불빛에 대해서는 찍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 다음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셨고, 두 분 신부님은 성당 마당에 그냥 한참 동안 서 있었습니다. 그날, 두 분 신부님은 인간적인 방식으로는 풀리지 않을 세상일을 하느님께서 자연스럽게 이루어나가심을 체험했던 너무나 행복한 날이었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