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날 가정이 물질적·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음에 깊은 공감과 연민을 표시했다. 하지만 교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우리들 가정에 함께하시고 끊임없는 사랑을 부어주시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격려했다.
쿠바와 미국을 9월 19~28일의 긴 여정으로 순방한 교황은 26일과 27일 제8차 세계가정대회 참석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이같이 강조하고, 모든 가정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돌봐 줄 것을 권고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이번 가정대회 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매일 다양한 행사로 꾸며진 본 행사(9월 22~25일)는 미국 순방 중인 교황이 함께하는 ‘교황과의 가정축제’(26일)에 이어졌고, 교황 집전 폐막미사(27일)로 절정을 이뤘다.
전 세계 100여 개국 1만75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사랑은 우리의 사명, 살아있는 가정’ 주제 아래 총 150여 명에 달하는 발표자들의 강연과 토론회, 매일 미사, 기도회, 영화제와 특별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들에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광주대교구장)와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조환길 대주교(대구대교구장), 총무 송현 신부로 구성된 한국대표단과 함께 교황청의 공식 초청을 받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참가해 가정대회 전 일정을 함께했다.
‘자비의 희년’ 선포 등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가정대회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 인류 가정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격려했다.
교황은 현대 가정이 많은 곤경과 문제에 부닥쳐 있음을 공감했다. 가정제도 자체가 퇴색되고 젊은이들은 점점 더 혼인을 미루고 의미 있는 관계에 얽매이기를 기피하는 풍조를 교황은 잘 알고 있다.
교황은 이러한 현대 가정의 상황, 관계와 신뢰의 극단적인 상실은, 효용성이 없는 것은 버리고 마는 ‘소비주의’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현대인들은 관계를 소비하고, 우정을 소비하며, 종교를 소비하고… 그 댓가나 결과가 어떠하든간에 우리는 그저 소비하고 또 소비한다.” 교황에 따르면, 유행을 좇고 “SNS에 ‘친구’를 쌓아”두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은 결국 ‘극단적인 외로움’에 빠진다.
특히 교황은 이러한 풍조를 ‘대형 슈퍼’들이 ‘동네 상점’들을 몰아내는 현상에 비유했다. 즉, 관계와 신뢰로 물건을 사고팔던 시대가 지나고, 인간적 관계가 배제된 채 오직 유용성만으로 상품을 선택하고 소비하는 시대에서, 관계와 신뢰의 가치와 의미를 잊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슈퍼마켓의 시대에도 가정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27일 300여 명의 가정대회 참석 주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황은 “가정은 결코 우려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최고의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하느님께서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파견하심으로써 스스로 성가정의 일원으로서 세상에” 오셨고 당신의 “사랑과 아름다움, 진리를 인간 가정에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교황은 그러한 희망적 전망 속에서, ‘지금의 상황에 절망’하거나, ‘현대의 풍조를 비난만’ 하거나, ‘과거에 대한 향수’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주님 은총의 선물’인 수많은 충실한 가정들이 있음을 기뻐하면서 “우려하거나 불평하기보다는 기뻐하고 감사할 것”을 권고했다.
이를 위해 교황은 사목자들의 회심과 모든 가정들의 참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교들은 “사목자로서 세상의 문제들을 되풀이하거나 그리스도교의 장점을 강조”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교황은 말했다. “실제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가르침만을 설명하는 교회”는 ‘위험할 정도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목자들은 사태를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시대의 상처들에 동행하고 그것들을 싸매주려고 노력”하며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혼인과 가정의 선물을 선택하도록 초대”해야 한다는 것이 교황의 권고이다.
교황의 권고는 주교 등 사목자에 이어 모든 가정들에게로 향했다. 27일 오후 필라델피아 벤자민 프랭클린 파크웨이에서 거행된 폐막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운집한 100만 명의 참석자들을 향해 가정 안에서 배울 수 있는 사랑의 ‘작은 몸짓들’을 강조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가정과 사회, 세상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날인 26일 저녁 같은 장소에서 거행된 가정 축제에서도 교황은 “서로의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하자”며 “서로를 지지하고, 서로가 다른 가정들을 돕고 돌보는 가정이 되자”고 권고했다. 교황은 춤과 음악, 기도로 풍성하게 꾸며진 이날 행사에서 “완벽한 가정은 없다”며 “사랑은 빛과 그림자 안에서 태어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에, 문제와 실수, 갈등은 참된 사랑과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라고 말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