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휴고의 「레미제라블」 중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를 만나 회개하는 장면은 책을 읽지 않은 이들도 잘 아는 명장면이다. 장발장에게 큰 사랑을 보여준 주교의 모습이 시대를 넘어 모든 이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바로 미리엘 주교의 모델이 된 성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1782~1861)의 영성이 그렇다.
프랑스의 귀족집안에서 태어난 성 에우제니오는 20세가 되던 해의 성금요일에 그동안 세속적으로 살아온 삶을 회개하고 하느님과 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 것을 다짐했다.
1811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귀족 출신이라는 이유로 교구 총대리직을 권유받지만, 거절하고 시골 본당으로 가서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일하고 선교했다.
성 에우제니오는 귀족 출신이었지만 귀족의 언어가 아닌 평민들이 사용하던 사투리를 사용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갔다. 특히 병자와 수감자,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하면서 프랑스 혁명 이후 하느님을 잊고 살아가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투신했다.
그는 이런 열정적인 선교를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펼쳤다. 이 공동체가 1826년 오블라띠선교수도회(원명: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오블라띠 선교수도회)로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1837년 마르세유의 대주교로 서품 받은 성인은 프랑스 혁명 이후 집권한 시민정부가 교회를 탄압하는 것에 맞서 신자들을 지켰다. 그는 교계 규율을 재건하고, 박해 당한 사제를 돌보며, 젊은이들을 위한 교리교재를 개발했다. 그의 재임 동안 본당이 23개 설립되고 교구 사제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성 에우제니오는 어디서 어떤 소임을 맡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바로 사랑이었다. 성인은 유언을 통해 “너희 안에서 사랑, 사랑,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해 열정을 다해 사랑하라”고 사랑을 강조했다.
사랑을 강조하는 정신은 그가 설립한 오블라띠선교수도회의 서원에서도 드러난다. 성 에우제니오는 일반적인 수도자의 3가지 서원에 ‘인내’를 더했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인내 없이는 변함없는 사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블라띠선교수도회는 세계 60여 개국에 진출, 4000여 명 회원이 성인의 영성을 따라 가난한 이들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교구에는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 불우한 청소년을 위한 시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센터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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