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의 작은 마을 장평리에는 세상의 풍파를 무릅쓰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결심한 이들이 찾는 곳이 있다. 바로 미혼모시설 생명의 집(원장 차화옥 수녀)이다.
생명의 집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논밭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마을이 있기는 하지만 가게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번화한 백암면 시가지에서도 7㎞ 가량 떨어진 외진 곳이다.
생명의 집이 세워진 1991년 10월에는 더 외진 곳이었다. 설립 당시에는 미혼모들이 세상의 뒤틀린 시선과 손가락질을 피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생명의 집을 설립한 것은 현재 평택대리구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김화태 신부다.
당시 김 신부는 행복한가정운동을 지도하고 있었다. 자녀 수를 인위적으로 줄이려 노력하는 사회에서 하느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생명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이를 돕기 위한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생명의 집을 설립했다.
1994년 생명의 집을 증축하고 연 봉헌식에서 당시 교구장 김남수 주교는 “이 집의 존재가 우리 민족의 잘못된 생명의식을 무너뜨리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주교의 바람이 담겨서일까. 설립 24년이 지난 지금은 생명을 살리는 이 소중한 곳에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봉사하는 단체들이나 비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명의 집의 갖은 일을 돕고 있다. 청소나 생명의 집 안팎 정리에서부터 아기 돌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을 기쁘게 해주는 이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물품 후원도 들어온다. 산모를 위한 물품에서부터 육아용품, 생필품까지 다양하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기용품을 보냅니다”, “아이를 키우는 마음은 똑같은 것 같아요, 힘내세요” 등 물품과 함께 온 응원의 메시지에 따뜻한 마음이 묻어났다.
원장 차화옥 수녀는 생명의 집에서 홀로서기 한 미혼모들을 위해서도 물품을 보내기 때문에 신생아용이 아닌 아기용품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명의 집을 거쳐 자립한 미혼모들도 아이와 함께 친정을 찾듯 생명의 집을 찾기도 한다. 지난 추석에도 충북 음성, 의정부 등에서 자립한 엄마들이 생명의 집을 방문해 명절을 보냈다.
24년 동안 사회로부터 소외된 미혼모들을 도와온 생명의 집이지만 최근에는 걱정이 한 가지 생겼다.
경기도 지역의 대형 미혼모시설 여러 곳이 문을 닫으면서 생명의 집을 찾는 사람이 급증한 것이다. 그동안은 미혼모들이 대체로 도시지역의 시설을 선호해 가난한 미혼모들을 주로 받을 수 있었다.
사정이 없는 미혼모가 어디 있겠냐마는 정원이 늘 가득 차 있으면 정말로 어려운 처지의 미혼모를 도울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하는 것이 생명의 집의 걱정이다. 더욱이 1991년 건립된 생명의 집 본관의 노후로 길 건너 생명의 집 신관에서만 미혼모가 생활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관을 사용하려면 신축이 필요하다.
생명의 집을 떠나는데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100일도 채 안된 갓난아기였다. 비록 아빠 품에 안기지는 못했지만, 이 새 생명의 울음소리를 듣기까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으리라. 돌아가는 길에 이곳의 아기와 엄마들이 보이지 않는 아빠 하느님의 품에 안겨 행복하게 살아가길 기도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