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 가정문제에 공감… 교회가 먼저 다가가 배려해야”
제8차 세계가정대회가 9월 22~27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사랑은 우리의 사명 : 온전히 살아있는 가정’을 주제로 열렸다. 한국교회에서는 이례적으로 고위 성직자 3명과 사제들이 참가했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와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장 조환길 대주교, 가정사목위 총무 송현 신부는 한국교회 공식 대표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특히 염수정 추기경은 교황청의 공식 초청으로 전 일정을 함께했다. 한국 참가단을 대표해 김희중 대주교와 인터뷰를 통해 이번 대회의 주요 내용과 한국교회 가정사목 문제점 해결을 위한 적용 방안 등을 들어본다.
“현대의 각종 사회적 병폐들의 밑바탕에는 가정문제들이 있습니다. 가정이 건전하게 기초를 잡고 서있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김 대주교는 현대사회에는 “혈연관계의 가족은 있지만, 사랑으로 성장하는 가정은 도리어 해체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우선 가정의 ‘가치’를 되살리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교회도 ‘가정의 위기는 곧 사회의 위기이며, 혼인과 가정의 온전한 가치를 증진시키는 것만이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을 치유하는 길’(가정교서 2항)이라고 가르쳐왔다. 하지만 오늘날 소비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가정이 해체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혼, 낙태, 피임, 동성애 등의 가정문제들을 일종의 논쟁거리 정도로 취급하는 모습도 왕왕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가정의 전통적 가치를 되살리고 현대에 적용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김 대주교는 이번 대회는 하느님의 무조건적 사랑, 무조건적 자비의 중요성을 환기한 자리라고 말했다. 누구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목적 배려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어려움에 처한 가정들을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도울 필요성과 방안 등을 공유하는 장이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이혼자들 중 꽤 많은 수가 본인 탓이 없어도 이혼을 당하고 고통을 받는다. 이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죄인으로 볼 것인가? 김 대주교는 교황의 말을 빌어 “율법적 잣대로 단죄하지 말고 자비 안에서 포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대주교는 무엇보다 이번 세계가정대회는 가정에 관한 전통적인 가르침의 가치를 환기하는 자리로서도 더욱 관심을 가질 만한 장이었다고 평가했다.
“현대사회 흐름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가치의 현실화’가 시급합니다. 종래 갖고 있던 가정의 가치, 소중함 등을 단순히 유교적 개념의 틀 속에 가둬둘 것이 아니라, 오늘날 상황에서는 그 가치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를 고심하고 실제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전통적인 가르침은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표준’, 올바른 방향이 된다”고 밝힌 김 대주교는 “교회가 제시하는 방향에 따라 실천하는 것은 개개인 몫이기도 하다”고 독려했다.
이어 김 대주교는 가정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몇 가지 실천사항을 권고했다.
“우선 교회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과 실천의 당위성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겪는 가정과 함께 하는 인간적인 배려를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주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실제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가르침만을 설명하는 교회는 위험할 정도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 대주교는 사목자들을 향해서도 “각 가정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좀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문제에 자기 일처럼 나서기 위해서는 우선 공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처럼 가정이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사목자들의 회심과 모든 가정들의 참된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사목자들이 가정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특별히 ‘기도하는 사목자’ ‘설교 잘하는 사목자’가 되자고 당부하셨습니다.”
설교를 잘한다는 것은 말씀을 제대로 선포하는 것이다. 설교를 잘 준비해야 하고, 이를 위해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사도들이 부제직을 설정한 것도, 애덕 행위 등은 부제들에게 맡기고 기도와 말씀선포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같이 사목자들도 기도와 설교, 말씀선포에 전념하라는 권고다.
또한 김 대주교는 “각종 가정문제로 힘겨워하는 이들, 가정을 포기하고 싶은 참담한 심정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교회가 적극 다가가 한 가족으로서의 면모를 실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연대감’을 강조하는 설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번 가정대회에서 한 개인이 가정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하더라도 성씨(姓氏)가 그대로 남아있듯, 어떤 경우에도 가족 간의 연결은 끊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한 형제자매들이라는 것이다.
김 대주교는 아울러 “가정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 왕직을 실천해야 한다”면서 “우선 기도 안에서 가족이 연대하고 서로 힘을 얻는 가정교회를 이루자”고 당부했다. “기도는 하느님과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영혼의 탯줄’과도 같아, 기도 안에서 가족들이 연대하고 서로 힘을 얻는 가정교회를 이룰 수 있다”는 조언이다. 이어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더욱 분명히 알고 선포하는 예언직을 실천하고, 말씀을 통해 깨달은 바를 우리 안에만 두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가 이웃과 세상과 나누는 봉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독려했다. 기도와 말씀, 봉사를 통해 가정교회 공동체를 더욱 튼실하게 세우자는 당부다.
“사랑만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참 삶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닮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지요. 가정은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로서, 거룩한 가정의 전통적인 가치를 재발견하고 발전시켜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의 기반이 됩니다.”
제8차 세계가정대회는/‘사랑은 우리의 사명’ 주제… 100여 나라서 참가
세계가정대회(World Meeting of Families)는 세계성체대회와 같이 전 세계 가톨릭신자들이 모이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지난 1994년, 유엔이 정한 ‘세계 가정의 해’를 맞아 이탈리아 로마에서 처음으로 가정대회를 열었다. 이러한 사목 의지에 따라 교황청은 3년마다 대회를 열고 가정의 가치와 소중함을 되새겨왔다.
세계가정대회는 교회 내적으로는 가정을 복음화의 중심이자 참된 교회의 기초조직으로 양성하기 위한 자리로 의미를 더한다. 또 외적으로는 일반사회가 가정의 의미를 재발견하도록 돕는다.
올해 대회는 미국 필라델피아 교구에서 100여 개국 1만7500여명의 신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사랑은 우리의 사명 : 온전히 살아있는 가정’(Love is our mission : Family fully alive)을 주제로 펼쳐졌다.
일정 중 각계 전문가 70여명이 가정과 관련한 강연에 나섰다. 특히 6차례에 걸쳐 이어진 기조강연에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실질적인 방법들을 비롯해 거룩한 가정의 유대 강화, 이웃과의 유대를 강화시키는 방안들이 제시됐다. 한국 대표단은 ‘하느님의 모상’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 이어 ‘어두운 세상 안에서의 가정’, ‘하느님의 선물 : 인간 성(性)의 의미’, ‘상처 입은 이들의 안식처인 가정’ 등의 강연에 참가하고 다양한 사목 정보 등을 공유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