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바르티매오의 간절한 외침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의 청은 마침내 예수님께 받아들여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비를 간청하는 그의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또한 그의 외침은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올 메시아이심을, 그리고 자비를 베푸는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청원과 기도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위해 기도하고 청하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신앙 생활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청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많은 말을 하거나 시시콜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기를 단순하게 청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르티매오는 단지 자비를 청합니다. 그가 진정 원했던 것은 다시 보는 것이었지만, 예수님께 가장 먼저 청한 것은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희망에 찬 걸음으로 예수님께 갑니다. 바르티매오가 거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에게 겉옷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과도 같아 보입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함께 그는 간절하게 바랐던 세상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치유해 주시자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 마치 제자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서 역시 하느님의 자비를, 위로를 이야기합니다.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들일 것이고 그들을 위로할 것임을 예언합니다. “그들이 큰 무리를 지어 이곳으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울면서 오리니, 내가 그들을 위로하며 이끌어 주리라.” 이 예언 안에는 이스라엘의 아픔이 담겨있고 하느님께서 그 아픔을 위로해 주실 것임을 말합니다. 위로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에 대한 표현은 구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위로는 구원을 나타내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바르티매오가 다시 보게 된 믿음,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하는 주님의 자비를 생각해 봅니다. 믿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에 충실하시다는 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반드시 지키실 것이라는, 그 말씀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우리가 하느님을 믿을 수 있는 가장 큰 근거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역사의 흐름 안에서 그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믿음은 변화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가진 것들을 변화시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고 절망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줍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감사할 수 있고, 기쁨을 나눌 수 있으며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믿음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이런 믿음과 함께 청하는 간절한 기도는 분명히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바라는 것을 주님께 청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청한다면 그 기도는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기도를 받아주지 않으신다고 불평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청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청하기 전에 나는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바치는 기도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간절하게 바치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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