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어느 본당의 주임 신부님 부탁으로 새벽 미사를 도와주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 본당에 미사를 가는 동안 맑고 시원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길을 걸으니, 마음 또한 맑고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루 중에 새벽은 언제나 신비롭고 묘한 기분을 갖게 합니다.
미사 30분 전에 도착한 후 고해소에 앉아서 신자 분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10분 동안 고해소 안에서 느껴지는 고요함과 적막함은 내 자신이 고해소에 앉아있는 것 자체로도 마음을 성찰케 합니다. 순간, 인기척이 들리고 누군가 고해소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낮고 작은 목소리로 성호경을 그었습니다. 반대쪽에서 들리는 목소리,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도 성호를 그으시더니, 죄를 고해하셨습니다. 할머니가 고해를 다 하시자 나는 ‘하느님 안에서 언제나 영육 간에 건강하시고 기쁜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씀을 드린 후, 보속과 사죄경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죄경을 주는 동안에 할머니는 뭔가 중얼, 중얼 하셨습니다. 순간 나는, ‘앗, 할머니가 다 고해하지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할머니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니 할머니는 뭔가를 웅얼웅얼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물었습니다.
“할머니, 이제 고해는 다 하셨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예, 다 했어요.”
그 말씀을 듣고 또다시 나는 할머니에게 보속과 사죄경을 주었습니다.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그러자 할머니는 다시금 중얼중얼, 웅얼웅얼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나는 ‘할머니가 고해성사를 마치기 전에 또다시 죄가 생각이 나셨구나!’ 싶어서, 고해소 칸막이에 귀를 바짝 갖다 댔더니, 할머니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웅얼웅얼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좀 크게 말씀 좀 해 주시겠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더 작은 목소리로 중얼중얼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소리가 멈추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할머니께서 고해를 다 하셨겠다 싶어서, 할머니가 분명히 들릴 수 있도록 간결, 명료한 목소리로 사죄경을 드렸습니다. 그 순간, 할머니는 또다시 중얼중얼 뭔가를 읊으셨습니다. 이제 조금씩 당황스러워진 나는 할머니에게 ‘고해를 다 하셨어요?’ 하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이 참, 가만히 좀 있어 봐요. 다 했다니까.”
“그러면 할머니, 제가 사죄경을 드렸으니, 이제 밖으로 나가시면 돼요.”
“알았다니까! 가만히 좀 있어 봐요. 기도 좀 하고!”
“할머니, 방금 제가 사죄경을 드렸으니,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나가셔도 돼요.”
“가만히 좀 있으래도. 우리 얘들, 우리 손자 손녀를 위한 기도가 안 끝났어요.”
그리고 다시 중얼중얼, 웅얼웅얼하더니 그제서야 마지못해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할머니는 고해성사를 본 후에 내가 사죄경을 드리자, 순간 가장 깨끗한 마음이라 생각했던지, 그 순간에서 당신 자녀들,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마치 그 옛날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빌었던 조상들처럼 말입니다.
그날, 새벽 미사를 마치고, 맑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성당 밖을 나오는데,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고해소에서 가장 깨끗한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보고, 새벽 공기를 머금은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싶었던 할머니! 새벽보다 더 오묘한 할머니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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