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치를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매우 숭고한 소명이고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복음의 기쁨」 제205항)라고 말한다. 가톨릭신문은 이 같은 정신에 따라 국가와 지역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김부겸 전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과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신종호 신부 대담을 마련했다. 김 전 의원은 제19대 총선거 당시 여당이 우세한 대구지역에서 40.4% 득표율을 기록한 바 있고, 지난해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수성갑 지역에서만 51% 상당의 지지를 얻는 등 동서화합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년 4·13총선 때 대구 수성갑 출마를 준비 중이다.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출마 후보자들에게 정책질의서를 보낸 바 있다. 82명 가운데 36명(43.9%)이 답변을 보내왔다. 정당별로는 민주통합당이 15명 중 8명(53.3%), 새누리당이 21명 중 5명(23.8%)이 응답했다.
지역주의는 트라우마 같은 존재
신종호 신부(이하 ‘신’) : 경기도에서 국회의원을 지내시고 대구에 온 지 4년 정도 되셨습니다. 좀 더 편하다고 할 수 있는 경기도에서 대구로 온 이유가 있으신지요?
김부겸 전 의원(이하 ‘김’) : 한국사회에서 지역주의는 트라우마 같은 존재입니다. 트라우마는 어떤 형태로든 끄집어내어 직시하고 집단적 경험을 통해 극복해야 사라지는 것이지요. 어느덧 정계를 은퇴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향에서 정치인으로서 지역주의에 맞서 뭔가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대구로 오게 됐습니다.
신 :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요?
김 : 크게 두 가지라고 봅니다. 가령 빈부격차나 남북문제 등 지역주의를 훨씬 넘어서는 사회적 아젠다(agenda·함께 협의할 주제)로 덮어버리는 방법이 있고요. 또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도 제안했지만, 국민 대통합이라는 구체적이고 의도적이면서 집요한 노력이 있어야겠지요.
신 : 대구지역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김 : 대구 사람하면 의리, 일관성, 무엇보다 애국심이 떠오릅니다. 대한민국 공동체는 우리가 책임진다는 강한 자부심이 있어요. 역사적으로 볼 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긍정적인 자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고집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세대의 가치만 강요해서는 안 되겠지요. 젊은 세대에게는 이른바 혹독한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신 : 지금 젊은 세대들은 특히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 고통과 좌절을 겪고 있습니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자라나는 세대들에 대한 교육에서부터 예전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식의 사고가 이 시대의 인식 체계로 존속하는 한 새로운 세대를 위한 모델이 자리 잡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 : 신규 일자리는 한계가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청년들은 도서관에서 몇 년씩 땀 흘려 공부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청년들에게 시대에 맞는 전망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이건 마치 “복권 당첨될 때까지 열심히 복권 사라!”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죠. 경쟁에서 점수 더 따면 인생의 성공인가요? 아이들 미래를 바꿔주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합니다.
신 : 결국 정치영역에서 그런 문제를 다루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군요. 그렇지만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는 다소 냉소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누구를 뽑아도 바뀌는 것 없더라”라고 하면서, 정작 계속 그런 분을 뽑는다는 거죠.
김 :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정치하는 사람 누군가는 솔직하게 이야기 해줘야 하고, 제도적 개혁이나 기득권 양보가 필요합니다.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한 노력들
신 : 이번에 노사정 합의가 이뤄졌고, 곧 법제화가 될 것인데요. 그중에서도 임금피크제 도입이라든지 일반해고 요건 완화가 가장 큰 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향후 사회적 약자를 더욱 내몰 수 있고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김 : 경제 활동하는 인간에게 퇴출이라는 것은 일종의 사형선고인 셈입니다. 쌍용차에서 해고된 분들이 왜 29명이나 그렇게 안타깝게 생을 마감해야만 했습니까. 앞뒤 보이지 않는 절망적 상황 때문 아니겠습니까. 사람을 내몰아치는 것은 노동개혁이 아닙니다. 아울러, 기업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면 그만큼 청년고용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업이 반드시 청년을 고용한다는 보장은 없는 거죠. 국회 입법 과정에서 최후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토론다운 토론이 필요합니다.
신 : 정부는 지난여름 제7차 전력수급 계획을 확정 발표했는데요. 이 계획에 의하면 영덕과 삼척에 핵발전소를 더 짓는다고 합니다. 현재 영덕에서는 활발한 토론과 움직임이 있는데요. 당장 11월 중 주민자치 찬반투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동해안에 들어서게 될 핵발전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 핵발전은 값싼 에너지이기 때문에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독단적인 신념으로부터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운용비용이 쌀 뿐이지, 해체비용과 기술 등을 생각하면 절대 값싼 에너지가 아닙니다. 이제는 에너지 수급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해야 합니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비극이 일어나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고 수습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누가 핵발전을 안전하다고 보증할 수 있겠습니까. 지구는 인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써야 할 ‘공동의 집’입니다. 그런 개념으로 서서히 국민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 단계에서 대한민국 산업과 경제생활, 모든 사회생활 등에 필요한 에너지 총 소비량이 얼마인데, 현재 에너지 발전용량은 얼마다. 이렇게 면밀한 검토를 해봐야 합니다.
신 : 사람들은 습관을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망만을 채우려하기 때문에 발전소를 더 지으려고만 하죠.
김 : 가톨릭교회에서는 생활습관부터 바꾸기 위해 ‘즐거운 불편’ 운동을 실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잔반 줄이기라든가 쓰레기 분리수거 등으로 상당부분 효과를 본 것처럼 이 문제도 사회적 동의가 필요합니다. 자신들 삶에서 필요성을 느낀다면 습관의 변화를 받아들이겠지요.
남북,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
신 : 경색국면이던 남과 북이 지난 여름 심각한 긴장관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는데요. 끝없는 대치와 긴장관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평화협정이 필요하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단계에서 해결책이 있을까요?
김 : 지금 당장 통일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평화적 교류와 협력, 그중에서도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단초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8·25 남북합의라는 간만에 온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도와줄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앞장서야 합니다. 체제논쟁으로 가면 불필요한 긴장관계만 있을 뿐입니다. 평화적 교류와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공존의 단계로 접어들 필요가 있습니다.
신 : 가톨릭교회는 군비경쟁이 평화를 구성하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전쟁 원인을 제거하기는커녕 오히려 위험을 증대시킨다고 봅니다.
김 :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도 결국 해체로 결론지어졌잖아요. 군비경쟁으로 얻는 균형은 가짜 평화라는 것이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증명됐습니다.
신 : 세월호 참사가 작년에 우리 사회 큰 아픔이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사 당시 언론들의 왜곡보도가 큰 문제가 됐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고, 의도적으로 축소시키는 등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회공공재라는 면에서 언론 역할은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김 : 매스컴은 사회의 공적인 정보전달 기능을 하고, 국민들이 그것을 평가하고 여론을 일으킬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에는 이 기능이 점점 축소되고, 기업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쪽으로 그 중심이 이동한 듯합니다.
신 : 교회는 국민들이나 시민들이 대중매체 정책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특히 대중매체가 돈벌이가 되는 사업일 때 특정한 이익집단을 위해 이용되지 않고 진정으로 민의를 대변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김 : 아까 세월호 이야기를 했지만, 누군가는 진지하게 세월호를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간직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야지요. 어린 생명들이 죽어 가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만 잊자고, 밥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말할 수 있어야지요. 의도적으로 이데올로기화 하려는 집요한 흐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입장 바꿔서 자신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할 건가요? 이건 공감능력입니다. 한국사회의 계급, 계층, 지역, 모든 모순이 함축된 이야기입니다.
신 : 깨어있다는 것, 의심하고 질문을 던진다는 것을 놓는 순간, 바로 누군가 주입하는 것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 교회 가르침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잖아요.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이야기는 한 단계 나아가 말하면 인간성에 대한 모독입니다. 우리는 그걸 극복해야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대구시민은 의리, 일관성, 애국심 등의 장점이 있습니다. 그 장점에 보편성이 합쳐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위엄을 갖추고, 변화의 에너지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 김부겸 전 의원은
재야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으로 1956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대 총선 당시 3선(16~18대)을 한 지역구 경기도 군포를 포기하고 야당의 불모지인 대구에 출마해 우리 사회에 강고하게 버티고 있는 지역주의에 대한 도전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최근 「우리가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 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더난출판)란 정치 토크집을 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수성갑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 신종호 신부는
1996년 8월 대구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대봉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중국 유학, 천부·다산본당 주임, 일심재활원장, 제1대리구 사회복지 담당 등을 역임했다. 올해 1월부터 정평본당 주임과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 정평위는 그간 ‘사회교리학교’ 개설, ‘생명평화순회미사’ 봉헌, 소식지 ‘함께꿈’ 발행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하느님 가르침을 전해왔다. 특히 지난 9월부터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 기념 ‘공의회 학교’를 열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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